“학부모 항의 전화와 민원이 폭주해 어쩔 수 없이 휴업하게 됐다. 메르스와 학교 현장이 무관하다고 해도 듣지 않는다”.
최근 자율 휴업을 결정한 서울 A중학교 교장은 “정보도 빠르고 민감한 부모들의 전화가 폭주해 휴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휴업을 반대하는 학부모도 꽤 있지만 ‘당신이 우리 애 메르스 걸리면 책임질거냐’라는 말에는 장사가 없다”고 털어놨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메르스 관련 휴업 학교는 서울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메르스 확산과 학교가 연관이 없는 만큼 현재 휴업하는 학교에 대해 수업 재개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학부모들의 공포와 분노가 촉발한 휴업 사태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창원이 추가되며 ‘앵그리맘’의 휴업 종용은 계속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창원 메르스 양성 반응환자가 입원했던 병원 인근 학교 등 전파가능성이 있는 학교에 대해 12일 하루 동안 휴업하기로 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휴업 조치는 해당 학교 현황과 경남도의 긴급대책회의, 학부모의 민원제기를 종합해 대책회의를 통해서 결정했다”며 “특히 메르스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상당히 심각한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휴업 학교 수는 이날 9시 교육부 기준으로 전국 2431곳에 달한다. 휴업 학교 수가 전국 전체 학교의 10%를 돌파한 셈이다.
메르스 확산과 이후 정부의 어설픈 대책이 잇따르자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고, 이로 인해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휴업 요청 민원이 학교별로 폭주했다. 이에 따라 휴업 학교 수가 2000곳이 넘게 된 것이다.
교육계에선 일부 학부모들의 경우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학생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공교육 불신’이 이번 기회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학부모는 “메르스 전염 걱정도 있지만 학교에 나가지 않고 학업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생각도 있어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부모들은 꾸준히 학교 현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지난 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교육 모니터링 등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학부모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전까지 학교에서 학부모회가 운영되는 학교는 전체의 65%에 불과했지만 발표 이후로 꾸준히 늘어 현재 거의 모든 학교에서 운영 중이다. 학기별로 모든 교사의 수업을 공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부터 의무화됐다.
휴업 등 학교 정책을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부모회의 임원이 참여하면서 학부모들의 입김이 세졌다.
한 학교 관계자는 “휴업 권한은 학교장에 있지만 메르스로 인한 정부 불신으로 책임론이 불거질까 두려워 학부모들의 민원을 대체로 따르는 추세”라고 전했다.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앵그리맘’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로 적극 참여하는게 맞다”며 “교육 문제는 사회 문제로 지금 까지 교육 문제를 너무 학교와 교사에게 위임했던 것으로 공동 책임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다른 교수는 “현재 주요 정책 결정 시스템은 미국의 체제를 따랐고 미국도 학교 휴업 결정은 1차적으로 학교장에 있다”며 “다만 학부모들이 학교를 압박해 다른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박완성 삼육대 교수도 “가급적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긴 해야 하지만 학부모의 의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며 “학부모들의 영향력 보다 교육은 공교육 기관이 조금 더 많은 영향력과 주인의식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일호 기자 /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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