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현대글로비스 블록딜에 실패한 현대차그룹은 지난 5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4주 전 냉담했던 시장의 반응을 180도 돌려놓았다.
현대차 이원희 재경본부장, 원종훈 부사장,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박장호 씨티글로벌증권 대표가 ‘사즉생’의 각오로 덤벼들었다.
이들은 실패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했다. 지난달 12일 블록딜을 타진할 당시 현대글로비스의 정몽구 회장 지분 180만주와 정의선 부회장 지분 322만주는 전날 종가보다 최고 12% 할인된 가격에 나왔다. 그만큼 매각에 적극적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이 부분을 의심했다. 현대차그룹에서 지분매각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결국 현대글로비스를 매각한 뒤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함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분분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지분매각을 철회하고 다른 방식을 찾아보거나, 재시도하거나. 둘 중 하나로 가야 했다. 정 회장 부자는 우회로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올해 이노션 기업공개(IPO) 등 굵직한 딜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가 처음부터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게 배경이었다.
일단 시장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했다. 박장호 씨티증권 대표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을 경우 씨티가 직접 잔량을 사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11억달러에 달하는 물량이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비스의 미래가치, 현대·기아차그룹의 발전 가능성 등을 들어 마
정몽구 회장 부자 또한 중간 과정을 세세히 챙겼다. 정 회장 부자 잔여 지분에 대한 매각 금지 록업 조항도 흔쾌히 수용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현대차, 씨티글로벌증권 모두 신뢰를 잃는다는 판단 아래 의기투합해 합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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