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발걸음 하나 하나, 그리고 표정 하나 하나가 기사감입니다.
시간대별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쫓아가보죠.
이 사진은 박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국회 본관 앞을 경호원들이 철통 같이 지키는 모습니다.
국회를 찾는데 왜 이런 철통 경호가 필요했을까요?
바로 이 사진 때문입니다.
국회 본관 앞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 처리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 옆을 무표정하게 지나쳐 본관으로 들어갔습니다.
▶ 인터뷰 : 세월호 유가족(어제)
-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인터뷰 : 세월호 유가족(어제)
- "우리가 뭘 어떻게 했다고 방패까지 들고 오십니까."
세월호 참사 이튿날 팽목항을 찾아 유족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하던 이 사진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말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4월 17일)
- "지금 심정이 어떤 위로도 될 수가 없을 정도로 안타깝고 애가 타고 한순간 참담하시겠지만 희망을 잃지 마시고 구조 소식을 모두 함께 기다려 주시기를 바란다."
어쩌다 박 대통령과 세월호 유족들이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추측컨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박 대통령과 유족들 사이에 조금 씩 벽이 생긴 듯합니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을 박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그렇게 된 듯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9월 16일 국무회의)
- "세월호 특별법도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쉽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지나 친 박 대통령은 국회 본관으로 들어섰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새누리당 의원들은 모두 일어섰고, 새정치민주연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유족 폭행 사건에 연루된 김 현 의원이 일어난 모습이 눈에 띕니다.
박 대통령은 시정 연설동안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의원은 경청도 하고, 때로는 박수도 쳤습니다.
시정 연설 전 박 대통령이 높은 연단에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까치발로 손을 내밀어 인사하는 모습은 웃음을 줍니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은 국회의장 위에 군림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이렇게 국회 의장 아래에서 연설하는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습니다.
연설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퇴장하는 모습은 1년 전과 많이 다릅니다.
1년 전보다는 많은 의원들이 통로에 나와 기립 박수로 배웅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의 관심은 국회 본관 문을 열기 직전에 쏠렸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어떤 인사를 할까 해서입니다.
박 대통령은 환하게 웃는 김무성 대표에게 슬쩍 손만 건넨 뒤 별다른 말 없이 그냥 지나칩니다.
오히려 그 전에 김태호 최고 위원이 적극 나서서 악수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며 김무성 대표를 힘들게 했던 김태호 최고위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뭔가 속내를 전하려 했던 걸까요?
그렇게 국회 본관을 빠져 나온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 별도 회동을 했습니다.
통상 대통령 오른 쪽에는 여당 대표가, 왼쪽에는 야당 대표가 배석하지만, 어제 회동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자리를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바꿨습니다.
야당을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회동에서 개헌 얘기는 일절 없었던 것으로 처음에는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문희상 위원장 = "개헌에도 골드 타임이 있다"
▶ 박 대통령 = "..."(미소만 지음)
▶ 김무성 대표 = "개헌 얘기는 그쯤 끝냅시다"
▶ 문희상 위원장 = "거 김대표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 박 대통령 = (웃음 터뜨려)
분위기가 짐작 되시죠?
사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국회 연설 전에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5부 요인과 환담을 마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일어섰습니다.
본회의장 사회를 봐야 하는 정의화 의장이 먼저 자리를 뜨고 다른 참석자들이 차례로 나가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만 남았습니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요?
▶ 박 대통령 = "수고하셨다. 고맙다"
김 대표가 전날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의원회관을 돌며 일일이 서명을 받고 의총에서 통과시켜준 데 대해 고맙다는 뜻일까요?
박 대통령의 두번 째 시정연설은 이렇게 여러 의미와 해석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