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벽이 있다. 시대가 변해 그 틈은 좁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그 어렵고 힘든 관계를 이어오는 아버지와 아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표현하지 못했을 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들, 아니 모든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둔 1972년, 회담의 리허설을 위한 독재자 김일성의 대역으로 선택된 무명 연극배우 성근(설경구)과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아들 태식(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들이 아버지에 쌓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과 두 사람이 다시 예전의 관계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잔잔하게 담아냈다.
사실 성근은 어린 태식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다. 태식은 아이들이 놀려도 아빠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자랑스러워 하고, 성근은 아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가장이었다. 비록 극단 막내 단원으로 전단을 붙이러 다니고, 행인1 등 단역만 맡으며, 배역을 다른 이에게 빼앗겼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던 성근은 기회가 생겨 연극 ‘리어왕’ 무대에 섰으나 긴장되고 떨리는 탓에 기회를 날려 버렸다. 태식이 객석에서 바라보고 있는 무대였지만, 성근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참하게 울고 있는 성근에게 허교수(이병준)는 ‘특별한 연극’을 준비하자는 제의를 하고, 그렇게 김일성 대역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정보부 오계장(윤제문)의 악랄한 고문을 통해 성근은 김일성을 보고 듣고, 교육까지 받으며 따라 했지만 프로젝트는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정상회담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난 데 없이 잘 굴러간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이야기까지 짜임새 있게 잘 구성했다. 임팩트 없이 느껴질 정도로 잔잔해 아쉽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주인공들을 희화화하지도 않았고, 관객을 눈물바다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적당하게 웃음을 주고, 울컥하게 한다.
김일성 대역 연기를 하는 설경구, 다단계 판매원이 된 박해일 등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필요 없이 최고다. 태식을 좋아해 따라다니는 여정 역의 신예 류혜영까지도 잘 어울린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눈물 흘리는 장면과 아들을 위해 마지막 연극 대사를 읊는 아비의 모습,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태식의 모습에서 조금은 변한 이 시대 부자 관계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는 영화가 아닐까. 15세 관람가. 127분.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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