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가 작사·작곡한 '소격동'이란 곡을 아이유가 불렀고, 이 음원을 정규 9집 발매 전인 10월 2일 먼저 공개한다는 것이다.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래 서태지 버전은 그달 10일 세상에 나온다.
폭넓은 연령대에서 골고루 사랑받고 있는 아이유다. 최근 '너의 의미'(원곡 산울림) 등이 담긴 리메이크 앨범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아이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서태지에 대한 배신감·반감이 강한 이들조차 아이유의 목소리를 통해 그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유'라는, 가수로서도 훌륭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방패막이자 첨병으로 삼은 셈이다.
본격적인 홍보전도 시작됐다. 서태지 홍보대행사 측은 그동안 가요계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이번 아이유와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자의 입장과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1980년대 소격동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테마로 했다. 두 개의 노래와 두 개의 뮤직비디오가 있다는 설명이다. 즉 "두 가지의 비밀 이야기를 퍼즐처럼 풀어나가는 형식"이라고 소속사 측은 부연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과연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콜라보레이션'인지는 의문이다. 드라마 혹은 소설에서 그러한 작법은 많다. 가요에도 각각 똑같은 제목의 노래로 기획되지 않았을 뿐 남녀의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은 종종 있어왔다. 바이브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비롯해 남녀가 호흡을 주고 받는 형태의 듀엣곡은 특히 그러한 형태가 여럿 있다.
서태지 측이 주장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란, 그저 요즘 가요계에 유행처럼 번진 '콜라보레이션'에만 포인트를 둔 것으로 비친다.
물론 어떠한 의도 따위보다는 음악적 특성에 따른 서태지의 순수한 접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이유는 서태지 아닌 여느 원로 가수와 음악적 행보를 나란히 한다해도 별 거부감이 들지 않을 가수다.
서태지 역시 소속사 보도자료에서 "‘소격동’이라는 곡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여자 가수로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아이유 씨를 떠올렸다"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 곡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해줘 무척 기쁘다"고 전했다.
서태지 측은 다소 사족(蛇足)처럼 느껴지는 아이유의 입장도 덧붙였다. "아이유 양은 서태지 씨의 제안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음악적으로도 존경하는 대선배의 곡에 참여하게 돼 매우 영광으로 생각하고 ‘소격동’이 본인에게도 뜻 깊은 곡이 될 것이라며 설렘과 기대를 나타냈다"고.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아이유의 '소격동'만 크게 히트하고 정작 서태지의 신곡은 묻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고 있다.
바로 그것이다. 서태지가 노리는 본 게임은 '소격동'이 아닐 것이다. 10월 20일 발매되는 정규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가 본작이다. 이 곡들은 앨범 발매에 앞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에서 베일을 벗을 예정이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던 과거의 서태지가 아니라지만, 가요계에서 그가 지닌 상징성은 여전하다. 다만, 더 이상 그의 '신비주의'가 설 자리는 없을 뿐이다. 유재석이 MC를 맡고 있는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도 출연하지만 사실 이 또한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서태지가 들고 나올 음악이다. 악성루머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기까지 한 그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가장 좋은 무기는 결국 음악이다. 그 첫 매개체로 '국민 MC' 유재석에 이어 '국민 여동생' 아이유를 택한 서태지의 선택이 영리한 듯 영악하다.
fact@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