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애너하임) 김재호 특파원] ‘이날을 위해 22년을 기다렸다.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다’
메이저리그 승격 통보를 받은 케일럽 클레이는 지난 11일(한국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런 소감을 남겼다. 현지시간으로 새벽 3시에 메이저리그 합류를 통보받은 그는 부랴부랴 짐을 싸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애너하임으로 이동, 이날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경기 때 선수단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정말 긴장됐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 마이너리그와 비교하면 모든 것이 다르다. 선수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있다. 경기장도 훨씬 크다.”
↑ 케일럽 클레이는 한화 이글스에서 부진한 성적 끝에 방출됐다. 그러나 2개월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사진= MK스포츠 DB |
한국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후 두 달 만에 생애 첫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그를 애너하임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잠깐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트라이크존이 제일 어려웠다
클레이는 이번 시즌 한화에서 기대하는 선수였다. 지난해 트리플A 시라큐스에서 14경기 등판, 5승 2패 평균자책점 2.49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무엇보다 이제 막 트리플A를 밟기 시작한 성장형 선수라는 점이 돋보였다.
한화는 그에게 개막전 선발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첫 경기였던 3월 30일 롯데전에서 5 2/3이닝 5피안타 2실점(2볼넷 2탈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출발은 좋았지만, 이후 부진이 이어졌다. 10차례 등판에서 모두 실점했고, 6이닝 이상 버티며 퀄리티스타트한 경기는 단 한 경기(5월 22일 넥센전, 6이닝 8피안타 3볼넷 2삼진 2실점)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6월 10일 KIA전 1 1/3이닝 7피안타 6실점의 성적을 끝으로 짐을 싸야했다. 최종 성적은 10경기 등판, 3승 4패 평균자책점 8.33.
그는 한국에서 있었던 시간들을 ‘도전’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도전이었다. 언어, 음식, 경기 스타일까지 모든 게 달랐다. 등판 간격도 불규칙했다.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면 휴식이 짧아졌다”며 모든 것이 어려웠고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스트라이크존.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작았다”며 말을 이은 그는 “전반적으로 작고 낮았다. 높은 공에 대한 스트라이크 판정이 특히 인색했다. 코너에 들어간 공도 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어려움을 얘기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적응해야 한다”였다. 새로운 무대에 온 이상, 새로운 무대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그는 서운함이 남은 듯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 스트라이크존을 경험하지 못해서 (자신들의 스트라이크존이) 얼마나 작은 지 모를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그는 한국 야구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꼽았다. 사진= MK스포츠 DB |
열심히 던지는 한국투수들, 놀라웠다
그래도 그는 “전반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며 한국 생활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인생에 있어 도전이란 것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름대로 의미도 부여했다.
그가 한국 투수들에게 받은 인상은 ‘근면하고 성실함’이었다. “3~4일 연속으로 그렇게 많은 공을 여러 이닝에 걸쳐 던지는 모습이 놀라웠다”며 다른 야구 문화를 접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금도 한화에서 동고동락한 앤드류 앨버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 한화에 입단한 라이언 타투스코와 SNS를 통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타투스코와는 지난해 시라큐스에서 같이 뛴 인연이 있다.
그가 뛰었던 한화 이글스는 현재 LA다저스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을 비롯, 대나 이브랜드(뉴욕 메츠), 프랜시슬리 부에노(캔자스시티) 등 다수의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들을 배출했다. 일각에서는 한화를 ‘메이저리그 사관학교’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이에 대해 클레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메이저리그에 간 투수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선수들이란 뜻”이라고 전제하며 “그 팀이 좋은 선수들을 스카웃했다고 봐야한다. 그 중에 일부는 성공했고, 나처럼 그러지 못한 선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어떤 역할이든, 버티고 싶다
클레이는 이번 시즌 트리플A 솔트레이크에서 8경기에 선발로 나와 3승 3패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운도 따랐다. 에인절스가 10일 보스턴과 연장 19회 접전을 치르며 불펜이 소진됐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비니 페스타노와 함께 그를 올렸다.
그의 역할은 불펜, 그중에서도 2이닝 이상을 책임지는 롱 릴리버다. 선발이 조기에 무너지거나 승부가 조기에 큰 점수 차로 갈렸을 때, 혹은 연장 승부가 이어질 때 역할을 하게 된다.
쉽게 기회가 주어지는 자리는 아니다. 그에게 얼마나 기회가 돌아올지도 미지수다. 에인절스는 올해 벌써 30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불펜의 물갈이 주기가 짧다. 그도 제대로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도 있다.
일단은 25인 로스터 기간인 8월에 생존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최대한 오래 버티며
한국에서 보여준 실망스런 성적이 잠깐의 부적응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에인절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는 13일 필라데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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