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유서근 기자] 2014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이승훈(26)에 이어 믿었던 모태범(25.이상 대한항공)마저 500m에서 4위에 그치면서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소치올림픽 사흘째인 11일 새벽(한국시간)까지 종합 10위권 진입이 목표였던 한국은 단 한 개의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순위권 밖에 머물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진다면 메달 획득에는 성공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2분 15초 062를 기록하며 동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 러시아로 귀화해 동메달을 안겨준 안현수(빅토르 안). 사진(소치)=옥영화 기자 |
2006년 토니노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쇼트트랙 1000m, 1500m, 5000m 계주에서 3관왕에 오른 안현수는 한국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 안현수는 국내에서 선수 생활 내내 한국빙상계의 병폐인 파벌싸움의 중심에 서 있었고, 부상과 소속팀의 해체 등으로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안현수의 자질과 능력에 눈독 들인 러시아 빙상연맹은 귀화를 제안했고, 안현수는 주변의 비난마저 각오한 선택 끝에 태극마크가 아닌 러시아 국가대표로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다.
안현수는 2011년 자신이 뛰던 성남시청이 해체된 후 사비로 혼자 훈련하려 러시아로 건너갔다. 당시 1년 동안 훈련을 목적으로 했으나 러시아의 든든한 재정지원을 약속한 귀화 권유와 국적 취득의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해 국적을 바꿨다.
파벌 싸움으로 인한 마음고생에다 소속팀 해체 후 무적자 신분인 된 상황에서 안현수의 러시아행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한국의 쇼트트랙 강자였던 안현수가 왜 러시아 귀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바로 스포츠계에 만연한 학연, 지연 등으로 인한 병폐 때문이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강자였던 안현수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
↑ 6회 연속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발탁됐지만 2006년 토리노 올림픽 4위가 최고 기록인 이규혁. 사진(소치)=옥영화 기자 |
국제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데다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이규혁이 국가대표에 선발되는데 토씨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러시아 언론들은 안현수의 동메달 소식을 전하면서 그를 극찬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 지금 ‘왜 안현수를 놓쳤나’에 대해 불만에 찬 팬들의 반응과 화가 난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기차는 이미 떠났다. 그는 현재 러시아 레일 위에 있다”고 보도해 한국 국민들을 향해 두 번씩이나 대포를 쏘아댔다.
반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은 1994년 릴리함메르 이후 2014년 소치까지 20년 동안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다. 이규혁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06년 토리노올림픽 1000m에서 거둔 4위. 이규혁과 안현수는 같은 대한빙상연맹 소
이규혁 주변에는 파벌싸움도, 동료 간의 신경전도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탄탄대로를 걸었고, 40세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잡음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공교롭게 10일 안현수와 이규혁은 나란히 경기에 나섰다. 안현수는 1500m에서 동메달, 이규혁은 500m에서 18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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