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2013년 한국 프로야구에 돌풍을 일으킨 넥센 히어로즈. 떠돌이 삶을 마감하고 구단이 정착한지 6년 만에 가을야구의 기적을 이뤘다. 이 중심에는 넥센의 수장 염경엽 감독이 있다.
넥센은 지난해 10월 18일 제 3대 감독으로 염 감독을 선임했다. 염 감독은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은퇴했다. 이후 7년 간 현대 프런트와 수비코치직을 맡은 염 감독은 LG를 거쳐 2011년 다시 넥센 작전·주루코치로 돌아왔다. 이처럼 염 감독의 야구인생 절반에는 넥센이 있었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구단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야구에 대한 연구로 후배양성에 힘썼다. 사진=옥영화 기자 |
염 감독은 “가장 후회스러웠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소질 하나만 믿고 야구를 쉽게 생각했다. 모든 걸 쉽게 얻다보니 그 선에서만 만족했다. 태평양에 입단했을 때에도 주전 9명에 들었다. 팀에서 1등이 아닌 리그에서 1등을 했어야 했는데 욕심이 적었다”라며 지난 시간을 후회했다.
그해 개막전은 염 감독에게 잔인했다. 프로데뷔 이후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서 빠진 염 감독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부끄러운 마음과 서러움에 북받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이전까지 남보다 뒤처지지 않다고 생각했던 염 감독의 자존심이 자신을 압박했다. 하지만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염 감독은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5년의 기회를 놓쳐 희망을 잃을 때쯤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결국 내 잘못이었고 오로지 노력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라며 모든 악조건을 그대로 받아드렸다.
염 감독은 선수 막바지 시절부터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나도 1000경기(통산 896경기) 출전에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다. 빨리 제 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애착을 버렸다. 선수로서 성공하진 못했지만, 후배들이 나와 같은 길을 밟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염 감독은 종로 일대의 서점을 뒤지며 야구 전문서적과 야구 비디오테이프 등을 구입해 야구지식을 넓혔다. 더그아웃에 수첩을 들고 들어가 선수 한 명 한 명을 집중 탐구했다.
2000시즌 이후 은퇴한 염 감독은 곧바로 현대 프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4개월 간 2군 매니저를 했고 이후 운영팀 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당시 염 감독의 삶에는 휴식이 없었다. 시즌 전 경기 및 선수관리, 해외 전지훈련, 연봉계약, 출정식, 시무식, 납회식, 우승 축하연 뿐 아니라 용병 스카우트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다. 염 감독은 “정신없이 보낸 6년”이라며 웃었다.
이 틈에서도 염 감독은 잠시도 예리한 눈썰미와 펜을 놓지 않았다. 염 감독은 “전 경기를 다 봤다. 안팎으로 야구를 보면서 메모를 했다. 내가 본 야구와 내가 겪어본 야구를 조합해 수첩에 적어 코치들에게 나눠줬다”라며 열의를 가졌다.
현재에도 염 감독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수첩을 둔다. 총 2권의 수첩에 경기 전략, 소속 선수 및 상대 선수의 특징 등을 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바로 적었다. 염 감독은 주제와 중요사항에 따라 색색의 펜들로 구분지어 빼곡하게 수첩을 채웠다. 덕분에 선수 개인 맞춤별 훈련이 가능했다.
염경엽 감독은 "생각하는 야구"를 실현시키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경기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염 감독은 “매 이닝마다 타자와 주자의 능력에 따른 작전에 깊이를 두며 항상 ‘왜’라는 의문점을 가져야 한다. 그 안에서 답을 찾아 훈련해야만 가지고 있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염 감독은 “결과는 매 경기의 마지막이다. 순위를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이며 공격적인 야구로 즐거움을 주면서 이기는 야구가 재밌는 야구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염 감독은 선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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