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올해 LG 트윈스의 수호신으로 우뚝 선 봉중근(33)의 뇌구조가 흥미롭다. 봉중근은 지난 23일 재활훈련을 위해 사이판으로 떠났다. 봉중근은 사이판행 비행기 안에서의 4시간30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봉중근은 마무리 투수로 보직 전환한 2년차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올해 55경기에 나서 61이닝 동안 8승1패 38세이브를 기록하며 LG의 정규시즌 2위, 플레이오프 직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특히 평균자책점 1.33은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봉중근은 이미 2014시즌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그의 머릿속에는 세 가지 분명히 자리잡은 생각이 있다. 첫째는 최고의 몸상태를 위한 재활, 둘째는 지난 시즌 동결된 연봉, 셋째는 2014시즌 이병규(39, 9번)에게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캡틴 완장이다.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봉중근이 올해 쌍둥이 수호신으로 우뚝 서며 철벽 마운드를 이끌었다. 사진=MK스포츠 DB |
봉중근은 휴식기 동안 일찌감치 몸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이판 재활조에 8년 연속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에게 사이판은 야구를 위한 생존의 장소다. 지난 2000년 왼쪽 어깨 수술로 박아놓은 핀이 훈장처럼 따라다닌다. 공을 던질 때마다 고정해 놓은 핀이 벌어진다. 완치를 위해선 재수술을 해야 하지만, 재활을 꾸준히 하면 한 시즌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 재활은 봉중근에게 숙명이다. 겨울마다 재활을 위해 최상의 조건을 갖춘 사이판을 찾는 이유다.
봉중근은 “사이판은 일종의 루틴이 됐다. 내가 더 원해서 가고 있지만, 구단의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이판을 안 가면 괜히 불안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재활에 적격이다. 한국에 있으면 여러 가지 환경에 노출돼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며 사이판행을 자처했다. 그는 사이판에서 있는 한 달 동안 어깨와 팔꿈치 재활 훈련에 80%, 러닝훈련에 20%를 할애할 계획이다.
봉중근의 몸상태는 정확히 어느 정도일까. 쉽게 말하면 ‘일년살이’다. 올 시즌을 마친 뒤 정밀진단 결과 5개월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3월까지 꾸준히 재활을 하면 한 시즌을 무리없이 던질 수 있다.
봉중근은 “수술을 안하고도 재활로 충분히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올해 작년보다 많이 던져 핀은 벌어졌지만, 통증은 전혀 없었다. 어깨가 많이 아프고 못 던지겠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앞으로 5~6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부상이다. 100% 완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재활을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봉중근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단지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만 들 뿐이다. 그는 “어머니 혼자 계셔서 많이 죄송하다. 그래도 아들 몸이 제일 먼저라고 챙겨주셔서 이해를 많이 해주신다. 감사하다”며 독한 마음을 품고 사이판으로 떠났다.
▲ ‘소화전 사건’으로 연봉 동결, 올해는…
LG의 2014시즌 연봉은 최대 관심사다. 올 시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연봉 상승이 예상된다. 특히 봉중근의 연봉은 팀 내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봉중근은 지난해 평균자책점 1.18 26세이브의 호성적을 거뒀지만, 연봉은 1억5000만원으로 동결됐다. 팀에 기여하는 그의 이름값을 놓고 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지난해 연봉이 제자리에 멈춘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즌 중반 ‘소화전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상승세를 타던 LG는 봉중근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소화전 함을 때려 골절상을 당한 뒤 급격하게 성적이 떨어졌다. 그에 대한 책임을 연봉 동결로 스스로 짊어졌다.
봉중근은 “지난해에는 내가 실수한 게 너무 컸다. 그래서 동결한다고 했다. 팀에 결과적으로 타격이 너무 컸다. 내 행동에 분위기 자체가 다운됐다. 반성의 의미였다. 그래서 올해는 더 이를 악물고 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순탄한 시즌을 보냈기 때문에 기대감도 크다. 봉중근은 “단장님과 잠깐 얘기를 했는데 각 팀 마무리 투수에 준한 대우를 해주신다고 했다. 정확한 액수는 아직 말한 적이 없다. 단장님이 ‘얼마나 줄까?’라고 하셨지만, 내가 아직 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신연봉제 피해로 2억3000만원이 삭감된 큰 아픔이 있었다. 연봉 문제로 구단과 안 좋게 할 마음은 없다. 서로 윈-윈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연봉 협상을 최대한 뒤로 미룰 예정이다. 동료 투수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LG는 올해 팀 평균자책점 3.72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다른 투수들의 연봉 상승 조건도 갖춰졌다. 봉중근은 “내 연봉의 인상률이 몇 %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후배 투수들이 ‘형이 나중에 해라’라고 하더라”며 막대한 책임까지 떠안았다.
송구홍 LG 운영팀장은 “봉중근이 그런 얘기를 해요?”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송 팀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뒤 봉중근을 비롯해 재활조에 포함된 선수들의 연봉 협상을 위해 12월초 사이판으로 향할 예정이다.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봉중근이 승리를 지켜낸 뒤 글러브에 키스를 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지난 2년 동안 LG를 이끈 ‘캡틴’은 이병규(9번)였다. 팀 내에서는 이병규가 주장 완장을 계속 차주길 바라지만, 이병규는 이미 고사했다. 자연스럽게 차기 후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 2년을 책임질 LG의 캡틴을 뽑는 투표는 내년 1월에 진행된다.
팀 내에서 공감대는 형성됐다. 1980년생 3인방이 후보군이다. 봉중근을 비롯해 이진영과 정성훈이 차기 주장 후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봉중근이다. 그동안 투수조에서 주장이 나온지 오래다. ‘야생마’ 이상훈(42, 고양 원더스 코치) 이후 투수 주장은 자취를 감췄다. 봉중근은 투수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여론과 상관없이, 봉중근은 주장을 완곡하게 고사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선수들이 병규 형한테 무조건 또 하라고 했지만, ‘난 안한다’고 못 박았다”며, 차기 주장에 대해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투수로서 모든 선수를 책임지긴 아직 이른 시점인 것 같다. 주장은 딱딱하게 할 땐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난 마냥 친하기만 하고 그렇지 못하다. 아직은 야수조에서 진영이나 성훈이가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주장에 대한 욕심은 은근히 드러냈다. 그는 “주장은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데 시기가 지금은 아니다”며 “사이판에 가 있는 동안 선수들이 결정을 해버릴까봐 겁이 난다”고 싫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 눈치였다.
봉중근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이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2014시즌에 대한 각오와 자신감은 분명했다.
그는 “올해에는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가 가장 아쉬웠다. 정규시즌 때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첫 플레이오프 치고 긴장을 하지 않은
이어 “내 목표였던 (오)승환이도 또 갔으니까 이제 (손)승락이를 목표로 재밌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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