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0년차. 아는 게 없어서였을까? 나는 유난히도 험난하게 배우의 길을 걸어 온 것 같다. 어렵사리 문턱에나마 발을 들이고 보니, 저 멀리 앞서간 선배님들이 그저 존경스럽고 대단할 따름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한 참 멀었단 걸 안다.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고 나는 또, 한 발 내딛으려 한다.”
강원도 출신의 한 끼 많던 소년. 어느 날 무작정 배우가 되겠다고 서울 행에 올랐다. 힘든 가정 형편 탓에 한동안은 연기 수업은커녕 생활비를 버느라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모조리 읽었다. 합기도, 킥복싱, 수영 등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지독한 성실함의 결과, 그는 어렵사리 따낸 단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과 연을 맺게 됐다.
언제부턴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호평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제 그는 제법 존재감 있는 ‘감초 배우’로 성장했다. 최근까지 ‘굿 닥터’에서 코믹한 연기로 시청자에게 웃음을 안겨줬던 배우 윤봉길의 이야기다.
“‘각시탈’ 이전까지는 강렬하고 거친 깡패 연기를 주로 해왔는데 요즘엔 유쾌하고 코믹한 캐릭터와 연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굿 닥터’는 현장 분위기가 좋아 배우들끼리 애드리브를 많이 했어요. 참 많이 웃었던 작품이죠.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또 하나 가슴에 새기게 됐네요.”
‘굿 닥터’는 자폐 성향의 발달 장애가 있는 주인공 시온(주원)이 편견을 딛고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의학 드라마. 여기에 소아외과 아이들의 쾌유와 미래,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의료진의 노력이 어우러져 진정한 ‘힐링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는 순간, ‘아, 대박 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온기’가 느껴졌거든요. 기존 의학 드라마가 병원 내 권력, 혹은 수술 장면에서 나오는 긴장감에 주목했다면 ‘굿 닥터’는 사람 냄새가 강하게 나는 작품이었어요.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덕목이랄까?”
‘각시탈’ ‘마의’ ‘굿 닥터’에 이르기까지. 윤봉길이 출연했던 최근작들은 시청률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도 인정받은 이른바 ‘웰메이드 드라마’가 주를 이룬다.
“배우들 스스로 ‘힐링’이 될 만큼 예쁘고 감동적인 대사가 많았어요. 반성도 하고, 가끔 생각에 잠기기도 했어요. 촬영장에 늘 아이들이 있다 보니 저절로 순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고창석, 조희봉 등 ‘베테랑’ 감초 배우들 사이에서 참 많은 걸 느끼고 또 배웠던 것 같아요. 차별화 된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늘 고민해왔거든요. 같은 조연이라도, 남과 다른 나만의 무기를 갖고 싶어요. 혹시 모를 기회가 찾아올까봐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하려고 해요. 그 무기는 강원도 사투리가 될 수도 있고 무술이나 춤, 혹은 노래가 될수도 있겠지요? 언젠가 분명 다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배우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아요.”
웃음 뒤에 숨겨진 열정이 뜨거웠다. 10년, 아니 그 이전부터 힘겨운 무명 생활을 지치지 않고 견뎌온 힘은 여기에 있었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시간이면 지칠법도 한데, 단 한 번의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중학교 때 우연히 접한 영화 때문이었을까요? 제 인생 목표는 ‘연기하다 죽자’였어요. 주변의 걱정이 끊이질 않았지만 제 안에는 확신이 있었어요. 좀 늦을 수도 있고, 주류가 아닐 수, 혹은 생각처럼 화려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난 분명 연기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믿음이요. 가상의 인물로 살고, 이를 위해 연구하고 표현하는 나를 보는 모든 과정에 여전히 설레는걸요.”
(사진=KBS) |
“힘들고 지칠 때,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동료, 선배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됐어요. 첫 대본을 받을 때 느끼는 설렘? 아끼는 사람들과 ‘연기’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고 웃고 떠들면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윤봉길은 특히 자신이 만난 동료들 중 배우 이상우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상우는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누구보다 ‘탁월한 인품’을 지닌 배우다”고 극찬했다.
“연기적으로도나 인간적으로나 겸손함이 몸에 배있어요. 많은 것을 타고 났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죠. 본인은 연기를 못하기 때문에 남들 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법이 없고, 남자다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이미 갖춘 것 보다 부족한 걸 찾아 보완하려고 늘 노력하는 사람이죠. 배울 점이 참 많은 친구예요.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 수 있을까요? 하하!”
한편, 윤봉길은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 ‘슈퍼맨 강보상’ 개봉을 각각 앞두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사진 유용석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