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로 나오는 이종석에게는 “야 임마. 오늘 닭 먹는 날이야. 닭 삼고 있다고. 너 호강하는 거야”라고 하는 등 ‘조정석표’ 애드리브의 향연이다. 글만으로는 사운드가 지원되지 않아 아쉽지만, 조정석 특유의 목소리 톤과 행동은 관객을 충분히 웃음짓게 만든다.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 듯하다.
또 조정석과 송강호는 관객을 웃게 만들뿐 아니라 울컥하게도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콤비도 이런 콤비가 없다.
이정재는 제대로 악역이다. 자신의 욕심만 챙기는 ‘도둑들’의 어수룩한 뽀빠이와 경찰대원과 폭력 조직원 사이에서 갈등하던 ‘신세계’ 속 자성은 없다. 또 다른 이정재의 매력이 얼굴의 흉터와 쇳소리나는 목소리의 수양대군으로 오롯이 터져 나온다.
기생집 주인 연홍을 연기한 김혜수는 분량이 적지만 섹시미와 카리스마를 뽐내며 관객을 유혹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었던 ‘너목들’의 멋지고 달달한 수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형편없어 보이는 캐릭터를 맡게 됐지만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는 이종석도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영화 ‘관상’은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 등 시쳇말로 ‘핫’한 캐스팅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의 연기는 ‘관상’의 매력 포인트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멀티캐스팅은 관객을 만족시킬 게 분명하다.
몰락한 양반 집 자제로 바닷가 촌구석에서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조촐하게 살아가는 내경(송강호). 얼굴만 보고 과거와 미래를 맞춘다는 소식에 한양에서 달려온 기생 연홍의 꾀임에 빠져 상경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시작이다. 혼돈의 조선은 ‘이리’ 수양대군(이정재)과 ‘호랑이’ 김종서(백윤식) 간에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경은 관상볼 줄 아는 재주 하나로 크나큰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유정난 속 한 집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몰락한 이 양반 집안은 다시 흥하는가 싶더니 위채위태하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정말 많이 방송 전파를 탔던 계유정난 이야기라 싫증이 날 법도 하지만, 관상가 내경이 등장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관객의 호감도를 높인다.
한재림 감독은 조선의 큰 사건을 바탕으로 내경 가족의 이야기를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아냈다. 희극과 비극을 적절히 조합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거대한 권력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공허함으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모습이 당연할 테지만, 그렇다고 쓰러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내경과 팽헌처럼. 풍파를 겪은 이들은 쓸쓸해보이지만 한결 편해진 얼굴이다. 얼굴상은 바뀐다고 하는데 운명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139분. 15세 관람가. 11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