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신기, 닛산 스타디움에 서다
동방신기가 일본 최대 공연장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에서 ‘동방신기 라이브 투어 2013 ~타임~’ 피날레 공연을 열었다. 지난 4월 27일 사이타마 아레나 공연을 시작으로 삿포로돔, 나고야돔, 후쿠오카 야후오크돔, 오사카 쿄세라돔, 도쿄돔까지 5대 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동방신기는 8월 17일, 18일 양일간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 무대에 올랐다.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은 우리에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결승 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1회 7만2천명의 관객 수용이 가능한 일본 최대 규모 공연장으로 스마프(SMAP), 엑스재팬(X-JAPAN), 에그자일(EXILE) 등 톱 가수들만 설 수 있는 꿈의 무대다. 일본에서도 단 12명의 가수만 닛산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곳에서 동방신기는 이틀간 14만 4천명의 관객과 만났다.
정규 앨범 ‘타임’(TIME) 수록곡 ‘페이티드’(FATED)로 공연의 포문을 연 동방신기는 ‘안드로이드’(ANDROID) ‘슈퍼스타’(SUPERSTAR) 등 댄스곡들과 ‘하트, 마인드 앤 솔’(Heart, mind and soul), ‘아이노우’(I Know) 등을 발라드 곡 등 ‘타임’과 ‘톤’(Tone) 앨범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번 공연을 위해 만든 신곡 ‘티 스타일’(T Style, 유노윤호 솔로곡), ‘록 유드 유’(Rock with you, 최강창민 솔로곡)도 선보였다. 국내에서 먼저 발표돼 큰 사랑을 받았던 ‘오 정반합’(O-正反合), ‘와이’(Why-Keep your head down)와 동방신기를 일본에서 톱 가수 반열에 올렸던 ‘쉐어 더 월드’(Share the world) 등 히트곡들도 공연됐다.
이들이 일본에 데뷔한 해인 2005년 발표한 ‘썸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가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스타디움 허공을 수놓은 수십발의 폭죽은 일본 데뷔 8년 만에 J-팝 정상에 우뚝선 것을 자축하는 듯 했다.
◯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일본에서 가수들의 투어 공연은 관객 규모에 따라 클럽 투어, 제프 투어, 아레나 투어, 돔 투어, 스타디움 투어로 등급이 올라간다. 이번 동방신기의 투어는 스타디움 투어는 아니지만 규모와 총 관객 동원에서는 이를 넘는 수준으로 진행됐다.
최소 회당 3만 6천명, 최대 5만5천명을 수용하는 일본 전국의 돔 다섯 곳에서 16회 공연을 열었으며, 7만 2천명 규모의 닛산 스타디움 2회까지 총 18회 공연으로 85만명을 동원했다. 일본 내에서도 단연 최대 규모이며 해외 아티스트로는 빌리조엘, 본조비 등 세계적인 거물들만 시도한 투어 일정이다. 이번 동방신기의 투어는 티켓 매출만으로 우리 돈 1000억원에 육박한다.
공연의 스케일 역시 일본 내 최대 규모다. 정상급 세션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와 12명의 메인 댄서, 곡에 따라 100명이 넘는 댄서가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메인 무대만 폭 95m, 높이 22m에 달했고 무대 양 옆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2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필드 객석 양 옆으로 120m의 모노레일을 깔았고 이를 이용해 동방신기 멤버들이 뒷자리 관객에게 보다 가깝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리프트를 장착한 이동 차량 2대가 동원됐다.
LED 팔찌 7만2천개가 모든 관객들에게 제공됐다. 이 LED 팔찌는 공연팀의 연출에 따라 원격으로 조종돼 초록색, 오렌지색, 파란색, 흰색, 핑크색, 파란색 등으로 동시에 변해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객석 중 일부 관객들만 LED를 다른 색으로 발광하게 해 동방신기 팬들을 의미하는 ‘WE ARE T’(위 아 티) 글자를 표현하기도 했다. 각종 레이저 쇼와 불꽃쇼가 쉴새 없이 펼쳐졌으며 공연의 대미는 수십발의 폭죽이 스타디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일본 최대공연장에서 막대한 자금과 물량, 기술력이 투입된 가장 화려한 쇼가 연출됐다. 최정상에 선 가수들에게만 허락되는 공연이었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 7만 2천 관객 앞, 마침내 나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
2003년 12월 26일 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소개된 동방신기는 ‘허그’로 정식 데뷔와 함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여세를 몰고 2005년 일본에 진출을 선언했지만 국내와 같은 초반 폭발적인 반응은 기대할 수 없었다.
에이벡스라는 일본 최대 아이돌 기획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야심차게 활동을 시작했지만 약 2년간 어눌한 일본어 실력 탓에 방송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고 음반 성적도 썩 신통치 못했다. 기실 J-팝계에서 한국에서 온 아이돌 가수에게 큰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동방신기는 언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쉼 없이 방송활동과 공연을 병행했다. 처음 이들이 선 무대는 제대로 된 음향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지방의 초라한 행사 무대였다. 동방신기는 일본 데뷔 2년 만에 언어 장벽을 극복하고 국적의 편견을 넘어서 일본 내 인기 아이돌 가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9년 박유천, 김재중, 김준수가 소속사와 갈등으로 팀을 떠나며 팀의 존립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오늘날 동방신기의 위상은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한 결과다.
유노윤호는 이날 닛산 스타디움 공연이 끝난 직후 “사람이 살다보면 스트레스도 받고 위축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고 자신 있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무대뿐이더라”고 말했다.
최정상에 서서, 더 이상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주변이다. 최강창민은 “후배들이 우리의 기록을 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껍데기가 화려하기 보다는 알맹이가 단단하고 응집력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팬들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해 롱런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고도 말했다. 비단 팬들을 향한 립 서비스가 아니다. 지키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걸 동방신기는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도쿄(일본)=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