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국가대표까지 지낸 유명 축구선수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은 아들이 아버지 못지않은 ‘기’를 뿜어내고 있다. 뿜어져 나오는 곳은 축구계의 본토라 부를 수 있는 유럽 대륙 복판이고, 그중에서도 유럽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다시 장악하고 있는 독일 땅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 더 기특하고 반갑다. 부전자전이고 청출어람이다.
MK스포츠는 지난 6월초 독일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왼발의 마스터’ 서동원이 다름슈타드 98(SV Darmstadt 98)의 U-19팀 코치에서 U-23팀 코치로 승격된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다름슈타드는 분데스리가에 ‘차붐’ 열풍을 일으킨 차범근 SBS해설위원이 독일로 건너가 최초로 입단했던 팀이고, U-23팀 코치는 우리 개념으로 따지면 2군 코치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유럽 아이들과의 경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버지 서동원의 ‘끼’와 ‘기’를 모두 물려받은 서종민군이다. |
자존심 강한 독일 축구계의 풍토를 감안한다면 크게 박수 받을 성과다. 동등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손흥민과 구자철이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 이상으로 서동원의 성공도 반갑고 값지다. 아직 그들 눈에는 ‘변방’에 불과한 동양에서 온 코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SEO’는 살아남았다. ‘원리와 원칙’이 떠오르는, 융통성을 기대할 수 없는 독일에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실력으로 거둔 성과라 더 값지다.
선수시절 ‘호랑이 같은 독기’로 유명했던 서동원이 얼마나 성실하게 땀 흘렸는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일까. 아버지의 뒤를 따라 축구선수의 길을 가겠다는 둘째 아들 종민군도 범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니, 이미 나타났다.
서동원은 아들 삼형제를 두고 있다. 셋 중 외모부터 성격까지 가장 닮은 아들이 둘째 종민군이다. 서동원은 “내가 봐도 어쩌면 나랑 이렇게 닮았을까 싶다. 아내는 집에 호랑이 두 마리(자신과 종민)가 있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라는 말로 유난히 닮은 종민군을 소개한 바 있다.
타고난 축구 센스는 물론 강한 승부근성까지 아버지를 빼닮은 종민군은 유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있다. 주눅은커녕 외려 도드라진다. 종민군은 현재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U-12세 소속이다. 벌써 3년차 ‘베테랑’이다.
종민군은 서동원이 독일로 건너갔던 2011년, 108명 중에서 단 2명만 뽑는 시험을 통과하면서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유스팀에 입단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종민군은 팀의 주전 공격수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스팀에서의 일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3년 동안 나가고 들어온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축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과 그들을 잘 키우고 싶은 ‘사커맘’ ‘사커대디’들이 넘치는 유럽에서 어린이들의 경쟁은 어른들 이상이다. 그런 와중 한국인 종민군이 등번호 9번을 달고 있다. 등번호가 가지는 의미를 안다면, 종민이의 팀 내 입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U-12팀의 주날 하칸(Sunal Hakan/왼쪽) 감독과 제츠킨 후고(Sezgin Hugo) 코치. 종민군을 애지중지하는 코칭스태프다. |
어지간한 아이들은 좋은 소리 듣는 것도 쉽지 않은 자리지만 종민군은 ‘감언이설’을 들었다. 지난 시즌 잘했던 것과 아쉬웠던 것을 짚어주면서 다음 시즌에는 공격수 혹은 처진 공격수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12개 정도의 대회에 출전할 것이라는 계획도 귀띔했단다. 잘해보자는 이야기였다.
코칭스태프가 특별히 공들이는 이유도 있다. 서동원은 “올 초 카이저슬라우테른 유스팀의 감독과 코치가 찾아와 종민이의 스카우트를 제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팀의 간판 공격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일종의 ‘작업’인 셈이다.
서동원은 “내 눈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은데 그래도 주위에서 잘 봐주는 것 같다”고 겸손해했으나 “그래도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유럽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는 말로 흐뭇
종민군의 꿈은 축구선수다. 단순히 대를 잇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다. 아버지를 닮은 ‘끼’와 아버지 못지않은 ‘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기대해봄직하다. 독일에서 ‘범’의 꿈을 키우고 있는 서종민.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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