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대의 농업용 트랙터 제조사 사장이던 페루치오-람보르기니는 여러 슈퍼카와 함께 페라리 250GTO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페라리의 클러치가 아주 쉽게 고장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페루치오는 당시 페라리의 사장 엔초-페라리를 찾아가 자신이 직접 개발한 클러치를 장착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당대 최고 인기스타 엔초-페라리는 페루치오가 농기계 제조사 사장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했다.
불같은 성격인 페루치오는 활활 타올랐다. 결국 직접 스포츠카 제작에 나선다. 목표는 하나였다. 페라리보다 강력하고 멋진 차를 만드는 것. 열정과 자존심으로 뭉친 페루치오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를 불러 모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페루치오가 스포츠카를 만든다고 할 땐 비웃었지만 그가 내놓은 스포츠카는 단숨에 큰 주목을 받았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 사진 = 독일 볼프스부르크 김한용 기자 람보르기니가 내놓은 첫 번째 모델인 350GT와 그 후속인 400GT는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다. 각각 242대, 247대가 판매됐지만 초고성능 차라기 보다는 페루치오가 원하던 고성능의 편안한 자동차, 즉 그란투리스모(GT)의 성격이 강했다.
◆ 미우라, 람보르기니의 기준이 되다
람보르기니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3번째 자동차인 미우라(Miura)를 내놓고부터다.
페루치오는 항상 대중적인 GT카를 바랬지만 정작 그가 영입한 젊은 엔지니어들은 마초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들은 레이싱에 빠져 있었고 도로에서 탈 수 있는 레이싱카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근무시간에 GT카를 만들면서 개인시간에는 미우라를 개발했다. 페루치오는 미우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이 차의 개발을 승인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차다. 그 결과 미우라는 람보르기니의 기념비적인 차가 됐다.
미우라의 독창적인 특징은 지금까지 람보르기니 차량에 이어져오고 있는데 양산차 최초로 엔진을 차체 중앙에 두는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을 적용해 슈퍼카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었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부터 차량에 투우와 관련된 이름과 황소 엠블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는 이때부터 투우와 관련된 이름을 차량에 붙이기 시작했고 황소 엠블럼도 사용했다. : 사진 = 독일 볼프스부르크 김한용 기자 이때 만들어진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지금까지 람보르기니에 이어지고 있다.
◆ 최대 385마력을 발휘하는 슈퍼카
미우라가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5년 ‘토리노모터쇼’다. 당시엔 미우라라는 이름 대신 ‘P400’로 불렸다. P400은 모터쇼에서 섀시만 공개됐지만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들은 뼈대만을 보고 예약하기 시작했다.
1965년 토리노모터쇼에서 공개된 람보르기니 P400의 섀시. 이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P400은 람보르기니의 장-파울로-달라라(Gian Paolo Dallara)와 파울로-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월레이스(Bob Wallace) 등 젊은 엔지니어들이 맡았고 이들은 차량 앞쪽에 세로로 장착되던 V12 엔진을 운전석과 뒷차축 사이에 가로로 배치시켰다.
양산차 최초로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을 가진 P400은 이듬해 제네바모터쇼에서 프로토타입으로 공개됐다. 디자인은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회사 베르토네의 마르첼로-간디니가 담당했다. 제네바모터쇼에서 P400은 일약 스타가 됐고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
미우라에 적용된 V12 엔진. 람보르기니는 미드십 엔진은 조향성 항샹이 주목적이라 밝혔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1966년부터 1972년까지 P400, P400S, P400SV(슈퍼벨로체) 등 총 3가지 모델로 판매가 이어졌다. 4.0리터 V12 엔진이 장착됐으며 각각 최고출력은 350마력, 370마력, 385마력이다. 5단 수동식 변속기,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디스크 브레이크, 알루미늄 차체 등을 고성능 스포츠카가 필요로 하는 사양을 고루 갖췄다. 미우라의 총 생산대수는 764대였다.
◆ 페루치오, “페라리가 람보르기니를 흉내낸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차량 외에 많은 스포츠카에 영향을 끼쳤다. 숙적인 페라리에게도 미우라는 충격이었다.
미우라의 디자인은 포드 GT40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사진 = 독일 볼프스부르크 김한용 기자 당시 페라리도 르망 레이스에서 사용하던 미드십 레이싱카 ‘250 LM’이 있었지만 양산형 모델은 FR방식을 고수했다. 미우라가 대성공을 거두자 페라리도 서둘러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의 양산차인 디노 206GT를 선보였다. 또 이탈리아의 자동차 업체 ‘데 토마소’도 ‘망구스타(Mangusta)’를 내놓았다. 란치아, 피아트 등도 잇따라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을 스포츠카에 적용했다.
데 토마소 망구스타와 람보르기니 미우라. 동일한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이지만 미우라는 가로로 엔진을 배치했다. : 사진 = 독일 볼프스부르크 김한용 기자 페라리를 넘어서고 싶었던 페루치오는 “이제는 페라리가 우리를 흉내내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엔초는 미우라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 발언에 별 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 발터드실바가 디자인한 미우라 콘셉트카. 미우라의 21세기 버전으로 현재 람보르기니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5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그 아름다움과 혁신성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또 미우라 출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치열한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상영 기자 /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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