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자세히 보니 반전 매력이 있다. 거친 듯 하면서 유연하고, 무뚝뚝할 것 같으면서도 위트 넘친다. 꽤 솔직하고 털털한 화법.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주진모(38)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담배 좀 피워도 될까요?” 물었다. 영화 홍보 인터뷰에 나서는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주류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경계인’ 같았다. 데뷔는 화려했지만, 행보는 소박했다. 작품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상업적인 스타가 되는 것보다 진지하게 연기하는 배우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한때는 ‘너 같은 놈은 연기하면 안 된다’는 욕도 먹은 적이 있었죠. 세수하고 스킨도 안 바르고, 독하게 연기로만 서 보자 싶더라고요”
15일 개봉한 영화 ‘가비’에서다. ‘가비’는 아관파천 시기를 배경으로 ‘커피’와 ‘고종(박희순)’을 둘러싼 음모와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주진모는 사랑하는 여인 따냐(김소연)를 위해 조국을 등지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내던지는 주인공 ‘일리치’를 연기했다.
“아니, 내 여자를 잃게 생겼는데 당연히 환장하죠.(웃음) 실제로도 이 여자다 싶으면 앞뒤 안 재고 한곳만 바라보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목숨까진 내놓지 못하겠는 걸요. 하하.”
‘일리치’는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빚어낸 캐릭터였다. 초고에선 “러시아에서만 활동하며 따냐를 조종하는 정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행동에 당위성을 불어넣고, 따냐와 러브라인을 만들면서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됐다. 왕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살인병기가 되기도 한다.
“‘쌍화점’이란 작품을 통해 왕을 해봤기 때문에 주저없이 일리치를 선택했어요. 고뇌하고 갈등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변해 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게 더 매력적이거든요.”
“이런 영화가 묻힌다는 게 좀 그랬어요. 투자 유치 등 제작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흥행)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몰랐던 진실을 알려주는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함께 연기한 여배우들은 모두 떴다. ‘해피엔드’의 전도연이 그랬고, '패션 70S'의 이요원, ‘게임의 여왕’의 이보영이 그렇다.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를 함께 찍고 대박이 났다. 김소연 또한 ‘가비’를 통해 재발견이란 호평을 얻고 있다. 주진모는 상대 여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배우로 정평이 났다.
“상대 연기에 공감하지 못하면 제 연기를 못해요. 상대 연기자가 끓어올라 표출될 때까지 기다라는 편이죠. 저 같은 배우도 있어야 한국영화가 잘 됩니다.”
그 중 김소연은 놀라운 성실함을 지닌 배우였단다. “흔들림 없이 지치지 않고 끝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하는 친구는 처음 봤다”며 “그것이 자극이 됐다”는 것.
“이제 겨우 정오를 맞은 것 같다”는 주진모 역시 갈증이 많다.
“대한민국 영화 시장이란 게 인지도가 없고 대중들의 호응이 없으면 하고 싶은 장르가 있어도 기회가 오지 않더군요. 흔히 연기파 배우들은 다양한 장르를 오가잖아요. 이제는 소설 밖으로 나와 땅을 밟으며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싶습니다. 편견 없이 제게도 누더기 옷을 입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주세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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