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 에이스가 편안한 상태로 레이스를 펼쳐 우승을 할 수 있게 30㎞ 동안 보조를 맞춰줘야 하는 페이스 메이커는 ‘삼발이’로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42.195㎞ 마라톤 경기에 30㎞ 밖에 뛰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치욕’이다.
최고의 기록을 만들어주기 위한 조력자인데 이렇게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게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라고만 가르친 한국사회의 모습을 투영해 보면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제작 드림캡쳐)는 아무리 잘해도 1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의 이야기라서 더 가슴을 뭉클하게 하나 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지만 동생과 함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주인공 주만호(김명민)는 마라톤 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부상으로 페이스 메이커만 하게 된 만호. 동생 성호(최재웅)는 마라토너가 아닌 페이스 메이커로 뛰는 형을 이해할 수 없고, 둘은 소원해졌다. 만호는 자신에게 찾아온 첫 번째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동생과 자기 자신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김명민은 이 영화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인공 치아로 이렇게 안타까워 보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또 한 번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물론 인공치아만으로 만호라는 캐릭터에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듯하게 자른 구레나룻은 조금 부족해 보이고, 그의 앙상한 상체도 안쓰럽다. 무엇보다 김명민의 연기가 이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과 합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로 탄생했다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김명민만 보이는 건 아니다. 고아라는 이렇게 완벽하게 트레이닝복 패션을 소화한 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트레이닝복으로도 남성들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쏟아지게 만들 정도로 충분한 매력을 과시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미녀새’ 유지원은 남을 유혹하려 하지 않아도 매력적이다. 대표 팀 박성일 감독을 맡은 안성기는 역시나 카리스마가 넘친다. 극의 한 축을 묵직하게 지탱해 나간다.
모든 게 완벽하다. 특히 김명민이 안쓰럽고 미안함이 들 정도로 측은하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 않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이의 도전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는 김명민의 연기가 빛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띈다.
다만 후반부를 너무 상업 영화적으로 끌고 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극적인 장치를 짜놓은 듯한 결말이라는 느낌이 다분하다. 경기 중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다리를 풀려고 허벅지를 찔러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은 이해한다. 실제 마라톤 경기에서도 몇 번 본 적 있는 것 같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을 이끌어 내려한 결승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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