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된 영화 ‘블라인드’(감독 안상훈)의 특별 영화 시사회. 영화가 끝나자 장애인들이 성우 서혜정(49)씨를 찾아 인사를 건넸다. 서씨는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해줬고 사인을 요청하는 몇 명에게 큼지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어줬다.
서씨는 화면 해설을 맡은 111분 동안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부드럽게 극중 상황을 묘사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위기 상황을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설명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며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이날 화면 해설을 하기 전 두 번이나 영화를 봤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나름대로 상상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극장 구석에서 나만 볼 수 있는 불빛을 켜놓고 화면과 원고를 번갈아 보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서씨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안 될 때가 있다”며 “‘이 부분은 어떻게 하지?’, ‘이건 어떻게 말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직도 공부를 더해야 하는 것 같다”고 고민했다.
1982년 KBS 공채 17기로 시작한 성우 생활. 서씨는 유명한 미국 드라마 ‘X파일’의 ‘스컬리’ 요원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재미를 준 스타 성우다. 최근에는 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에서 특유 음색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그가 지난 4월에 낸 에세이집 ‘속상해하지 마세요’의 프롤로그에 쓴 것처럼 성우를 시작한 지 29년, 세상의 폭풍 같은 관심을 받아본 적 없었지만 ‘남녀탐구생활’은 많은 변화를 줬다. 물론 주위에서 더 많이 알아봐주는 등 변화가 있긴 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똑같다. 그 중 하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목소리로 전하는 봉사다.
서씨는 성우가 된 뒤 선배들을 따라 너무도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다. KBS 성우극회는 2004년부터 시각장애인연합회와 결연해 화면해설 방송과 도서 녹음 봉사 등을 해왔다. 비공식적이지만 이전에도 성우들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왔다.
“선배들과 함께 너무나 당연하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녹음을 하러 다녔어요.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성우가 800명 정도 있는데 거의 이런 봉사활동을 해요. 좋은 현상인 것 같고, 앞으로도 이런 활동이 계속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서씨는 이번 화면 해설 시사회에 참여하며 느끼고 바라는 점을 전했다.
그는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문 작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영화의 대본을 작성하긴 하지만 화면 해설을 위한 전문가들은 아니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해 더 전문적인 분들을 키우거나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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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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