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주말을 앞두고 내내 설�다. 내가 좋아하는 파티 브랜드가 여는 파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것보다도 음악에 가장 비중을 크게 두는 이 파티의 골수팬들은 꽤나 많으며 나 역시도 그중 한명이다.
이 파티의 피크타임을 장식하는 DJ는 백승이다. 1시 반이 조금 넘자 VIP존에 있던 나와 내 친구들도 모두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을 비집고 DJ 턴테이블 맨 앞에 서서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아마 그날 모든 클러버들의 마음이 똑같았을 것이다. 이 파티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를 보기 위해 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윽고 그가 셋(set)을 하기 위해 잠시 턴테이블 앞에 서기만 해도 모든 클러버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는 등장 역시 남달랐다. 뇌 주름 사이사이를 관통하는 듯한 싸이트랜드(psytrance) 음악이 흐르다, 갑자기 낮고 느린 음악이 깔렸다. 스크린에는 사전에 제작한 영상이 흘렀다. 싸이트랜스에 맞춰 미친듯이 춤을 추던 클러버들이 갑자기 정자세로 스크린을 보고 있는 참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어떤 이들은 숙연해하기 까지 했다. 그러다 갑자기 DJ 백승의 등장이 내레이션으로 알려지고 사람들은 박수갈채는 물론이고, 뒤에서는 “역시 백승!”이라는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실력은 물론이요, 쇼맨십까지 지닌 선수 중에 선수였다. 명불허전. 파티에서도 과연 그러했다. 등장만 화려하지 않았다. 그날 분위기는 최고였다. 참고로 난 이날 예거밤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아서 하나도 취하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파티를 쫓는다. 그리고 잘하는 DJ를 찾는다. 그 DJ가 있는 클럽에 가서 돈을 쓴다.
어찌 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음반 불법 복제는 심각한 수준이었지 않은가. 하기야 지금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비해서 mp3 파일은 동전 몇 개 이니 암담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대중문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은 10대들. 나 역시도 이러한 10대를 보냈다. 선생님들까지도 체육대회날이 되면 불법 다운로드한 파일을 CD에 구워오셨으니 말이다.
아마 지금 20대 초반은 다들 나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음악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향유하는 것보다 공짜로 즐기는데 더 익숙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후진국인 문화 교육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DJ를 찾아가 돈을 쓴다. 500원도 아까워하던 그들이, 하루에 3만원을 내고 그의 음악을 들으러 온다는 것이다. 3만원뿐이겠는가, 욜란다 비쿨이라는 아티스트의 곡은 ‘we no speak americano’밖에 모르는 이들이 그걸 라이브로 들어보겠다고 11만원을 내고 클럽에 온다. 역시나 셋리스트의 마지막곡이 ‘we no speak americano’였고, 사람들은 그 곡을 들은 후 우르르 빠져나갔다.
DJ가 잘해야 클럽 분위기도 좋아지고 사람들이 제대로 놀 수 있다. 처음에는 그냥 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위상이 달라졌다. DJ를 보러 파티에 오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DJ백승을 보려면 이번주에는 어느 클럽을 가야한다. 그가 이번주 어디서 플레잉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아본다는 것. 파티에서 주로 흐르는 음악들은 방송 등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대부분 클럽에서만 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음악들도 mp3 파일을 살수는 있겠지만, DJ의 이름을 알아야 찾아보고 살 것이 아니겠는가. 클럽에서의 감흥을 못 버린 이들이 생전 안 사던 mp3파일을 사기 시작하고, 주말에는 직접 들으러 간다. 어쩌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문화라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직접 찾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화의 프레스티지는 더욱 보존이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즐기려고 찾던 클럽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 건강한 움직임들이 보여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클럽, 파티라는 문화의 이러한 장점들을 십분 활용해도 다시금 문화에 지갑을 여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소규모 뮤지컬, 연극 공연들은 늘 관심밖에 있었으며 쭉- 가난해왔다. 홍대에서 공연 중인 ‘클럽 뮤지컬’은 젊은이들의 꾸준한 애정을 받고 있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문화만 우월하다고 느끼거나 원형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나 사랑받는 문화로의 접목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돈을 쓰고 박수를 보내고 직접 입소문을 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글쓴이 지예. 23세. 직업은 작가. 케이블 채널 tvN ‘러브스위치’에 출연하며 ‘압구정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주일에 최소 3일 이상은 강남 클럽 일대에서 그녀를 목격할 수 있다. 현재 강남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과 놀이문화, 가치관을 다룬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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