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프랑스가 약탈해 갔던 외규장각 도서가 잠시 전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과정과 역사적 의미에 대해 현장 중계차 연결해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강태화 기자.
【 기자 】
네, 인천 국제공항입니다.
【 질문 1 】
145년 만의 귀환이죠? 외규장각 도서가 드디어 우리나라로 돌아온 거죠?
【 기자 】
네, 외규장각 도서가 잠시 전인 1시 48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지 145년 만의 고국 땅을 밟은 겁니다.
이곳 인천공항에는 외규장각 도서의 통관을 기다리는 취재진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는 오늘을 시작으로 다음 달 말까지 4차례에 나눠서 우리나라로 돌아올 예정인데요.
한꺼번에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건, 혹시 모를 사고로 소중한 문화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조치입니다.
외규장각 도서는 모두 297권인데요.
이 가운데 오늘은 1차 반환본 75권이 현재 인천공항에 도착해 통관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우리나라에 없는 유일본 30권 중 일부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제 잠시 뒤면 통관을 마친 도서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질문 2 】
소중한 문화재이다 보니까 운송 과정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텐데. 반환된 도서는 어떻게 운반될 예정인가요?
【 기자 】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 시간으로 오늘 새벽 3시 10분 프랑스 드골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10분 경이니까, 11시간 정도가 걸린 셈입니다.
도서는 2개의 특수 컨테이너 박스에 담겨 운송됐는데요.
지금은 5개의 상자에 나눠서 통관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잠시 뒤 제 뒤로 보이는 13번 게이트 통관대를 빠져나온 뒤에는 무진동 특수운송차량을 이용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동 과정에서 혹시라도 파손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4시쯤에는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을 전망인데요.
박물관에 도착해서는 수장고에 보관됩니다.
5월 말까지로 예정된 4차례의 반환이 모두 마무리된 뒤에는, 오는 7월부터 반환 문화재 특별전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 질문 3 】
145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협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 기자 】
외규장각 도서는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1866년에 프랑스가 약탈해간 문화재입니다.
그동안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도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알려진 건 지난 1975년이 돼서입니다.
100년 가까이 이 소중한 문화재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건데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확인된 뒤에는 1991년부터 서울대가 반환을 요청하면서 프랑스와의 반환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협상 초창기에는 프랑스의 고속전철 도입 등과 맞물려 반환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듯했는데요.
당시 297권 가운데 1권이 실제로 반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영구대여'와 문화재 '맞교환 방식'을 두고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는 등 협상은 험난한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이 '일반대여' 방식에 합의하면서 반환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 질문 4 】
사실, 지금도 '반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정확히는 '대여'라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 기자 】
말씀하신 것처럼 양국의 협의는 '반환'이 아닌 '일반대여'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받는 게 아니라, 일단 빌려오고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하게 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5년 주기의 조건부 반환인 셈인데요.
이런 협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불법적으로 약탈당한 문화재에 대해 빌려오는 게 굴욕적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자동 갱신이 가능한 사실상의 영구 대여"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반환과 다름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5년이 지나더라도 양국이 상호 연장 통보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정부 간 합의문에는 "양국 수교 130주년인 2015년과 2016년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한국문화재 전시회에 외규장각 도서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때 프랑스로 돌아간 의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은 불완전한 반환에 대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돌아온 문화재를 제대로 연구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 질문 5 】
아무튼, 소유권은 프랑스에 있다는 뜻인데요. 소유권 문제로 인해 활용의 제약도 있겠군요.
【 기자 】
네, 외규장각 도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관리 규정에 입각해 취급됩니다.
도서의 촬영이나 복제·전시 등이 가능하다는 뜻이고요.
실제로 7월 말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환수 문화재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프랑스 소유이므로 국가 문화재로 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정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소유권자가 아니어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도 법적으로 우리 소유가 아니지만, 직지심경을 간행한 흥덕사가 있던 충북 청주시의 신청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 질문 6 】
그렇다면, 이번에 돌아오는 도서들이 문화재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 건가요?
【 기자 】
외규장각 도서는 대부분 의궤(儀軌)입니다.
의궤는 조선 시대에 국가나 왕실의 중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 문화의 꽃'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특히 외규장각 도서는 왕이 보도록 최고급으로 만든 어람용 의궤인 데다,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 30권가량 포함돼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의궤는 국가나 왕실의 중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필사본인데요.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는 어람용 의궤로, 고급 종이인 초주지에 최고급 물감으로 그려졌고, 30권은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입니다.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한 조선왕실 의궤 등과 비교해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질문 7 】
그렇다면, 외규장각 도서에서, 외규장각은 어떤 기관이었습니까?
【 기자 】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한 도서관입니다.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했고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서적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외부 침입이 어려운 섬이라는 특징 때문에 강화도에 만들어졌는데요.
그러나 1866년 고종 3년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이유로 강화도에 침입하는 '병인양요'를 일으켰습니다.
프랑스는 이때 도서 300여 권을 챙겨가면서 나머지 책과 건물 모두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때 프랑스가 가져간 도서 중 대부분이 이번에 돌아오는 의궤들입니다.
프랑스는 이때 의궤만 약탈된 것이 아닙니다.
로즈 제독이 이 물품들을 프랑스로 보내기 위해 작성한 목록을 보면 이 의궤들뿐 아니라 은궤나 지도 갑옷 투구 등도 적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돌려받아야 될 물품이 더 많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질문 8 】
실제로 약탈 등으로 통해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얼마나 되는 건가요?
【 기자 】
현재 해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우리 문화재는 14만 점이 넘습니다.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은 일본입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는 일본에만 6만 5천 점, 미국에 3만 8천 점, 독일에도 1만 점이 넘게 유출된 채로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해외문화재협의회'를 구성하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시작으로 해외에 있는 문화재 환수를 위한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 질문 9 】
불법 반출된 해외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한 전담 조직도 만들 계획이라죠?
【 기자 】
네, 문화재청 안에 해외문화재 전담팀이 생깁니다.
해외 문화재 조사는 단순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출 경위까지 조사해 불법 반출된 것을 알아낼 계획입니다.
현재 해외에 있는 14만 점의 문화재 가운데 어떤 게 불법 반출된 것인지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불법 유출이 확인된 것으로는 이번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이 소장 중인 조선왕실 의궤가 대표적입니다.
프랑스에는 의궤 말고도 역대 임금의 글 모음인 '열성어제'와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등 인쇄본 43권과 고지도 2점 등이 더 있습니다.
이런 문화재 역시 병인양요 때 것이지만 정부 간 반환 협상에서는 빠졌습니다.
일본 궁내청의 조선 왕실 의궤는 167권입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지난해 8월 이 의궤들을 비롯해 '대전회통' 1권과 '증보문헌비고' 99권 등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불법 유출된 도서 1,205권을 한국에 인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국회의 비준 과정에서 반대 의견에 막혀 반환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 질문 10 】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에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이 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요. 일본에 있는 문화재의 반납은 진전될 기미가 없다고요?
【 기자 】
네, 일본의 도서 반환 절차는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하며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가져온 도서를 반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1월에는 이 대통령과 간 총리가 한·일 도서반환협정에 서명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해 1,205권의 약탈 도서를 돌려주는 것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임시국회에서 한·일 도서 반환 협정의 비준을 시도했지만, 야당인 자민당의 거센 반발로 처리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대지진 참사로 민주당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서 6월에 끝나는 일본 정기국회에서도 도서 반환 문제의 처리는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오히려 일본 자민당이 한국에 있는 일본 도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라고 외무성을 압박하는 등 도서 반환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반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천국제공항에서 MBN뉴스 강태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