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본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재앙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자폐아에 교장의 귀를 물어뜯고는 학교에서 탈출하여 쓰레기 매립지까지 굴러 들어온 고아의 말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더 불행한 것은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훤히 다 보이는데 정작 자신의 과거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부모가 있었을까? ‘5초 후 사망확률’을 알려주는 시계는 누가 만들어 보낸 것일까? 소녀는 진실을 알려고 몸부림치다 수많은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한국인 김예빈이라는 자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공공연하게 약속한 ‘다음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라는 약속을 지켰다.
소설 <카산드라의 거울>은 ‘쓰레기 하치장’을 주요 무대로 해서 엽기적인 노숙자들의 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공간을 상상으로 연출하지 않고 현존하는 파리의 타워와 배수지, 지하터널 등을 고스란히 옮겨와 현실성을 더했다. 여기에 고대와 기계문명을 오가는 기발한 상상과 거친 액션까지 등장했다.
이번 소설을 접한 독자들은 작가 스스로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시도를 해 사실 좀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감탄을 동시에 연발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 존재감을 과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세상이 내다버린’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내세워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이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싶어질까? 미래를 예지하면서도 과거는 암전돼버린 카산드라처럼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찾게 될까? 쉽지 않는 이야기다. 저자가 그리스 신화의 저주받은 예언자 카산드라와 17세 소녀 카산드라 카첸버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간 것은 독자들에게 이런 내적 탐구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인 독자를 위해 특별히 한국인 이름의 중요인물까지 만들어 놓고 우리를 끌어당겼다. 이제까지 각각 추구해온 과학과 신화를 따로따로가 아니라 통합해서
독자는 그가 제시한 미래와 과거 통합형 전제조건이 과연 맞는지 탐색해볼 만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지 않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이 소설은 2011년, 혹은 미래를 새롭게 설계해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화두가 되어줄 것이다. (카산드라의 거울1,2/열린책들 출간/양장본/각권 11,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