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끌거리며 잘도 빠져나가는 상황을 묘사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꾸라지는 뮤신이라 불리는 점액성 물질 덕에 책임 떠넘기기와 회피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뮤신은 미꾸라지만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 회장님들도 국회에서 국정감사에 나와달라고 요청만 하면 해외출장이다 뭐다 일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어 국회 환경노동위에 증인으로 채택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증인이 아닌 별도 청문회에 나가게 됐죠.
국감의 여럿 증인 중 한 명으로 나가는 것과 청문회 당사자로 지목돼 청문회에 나가는 것 어떤 게 더 부담스러울까요.
물론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 학교폭력 의혹으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처럼 청문회에도 안 나갈 수 있겠지만 어쨌든, 뭐 피하려다 뭐 밟은 셈이 돼버렸죠.
그간 국회가 군기를 잡거나 위세를 부리기 위해 국감장에 기업 오너나 CEO를 불러세우는 일이 잦아,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들은 다릅니다.
왜냐고요.
허영인 회장은 지난해 10월 SPC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어 숨졌고, 향후 3년간 1,000억 원의 안전경영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불과 10개월 뒤 또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노동자가 숨졌음에도,
그래서 지금 회사가 '죽음의 사업장'으로까지 불리는데도, 박람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국감을 피했고.
이해욱 회장은 그룹 계열사인 디엘이앤씨 건설 현장에선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만 근로자 8명이 숨졌는데도 바쁘다고 안 나오는 거니까요.
이들이 뭘 믿고 이러는 걸까요. 국감을 무시하고, 국감에서 이래도 되는 걸 누구한테 배웠을까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죠.
국회에 왔으니 그동안 국회에서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 한다고, 과연 국회에서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미꾸라지의 뮤신은 누가 더 많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끝까지 부른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