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적발은 '하늘의 별 따기'
강남구 역삼동에 거주하는 중학교 2학년 염 씨(15). 학교로 나설 때면 주택 문에는 ‘A 피트니스 파격 할인’, ‘5분 대출’ 등의 글귀가 적힌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길가의 전봇대에도, 학원 가는 지하철 열차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늦은 저녁, 염 씨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 10시. 역삼역 출구에 오전과는 다른 전단이 지저분하게 퍼져 있는 걸 발견합니다. 염 씨는 “‘란제리 셔츠룸’, ‘24시 대기’ 등 난생처음 들어본 단어들을 마주했다”며 “학생들도 지나다니는 곳에 이런 전단을 뿌려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 역삼역 근처 살포된 선정적인 불법 전단(촬영=정예림 기자) |
염 씨가 하루 동안 접한 전단은 총 30개가 넘는 양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홍보라는 단순 목적이라도 전단 배포 방식과 내용에 따라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여전히 일부 카페에서는 불법 전단의 기준과 처벌 여부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불법 전단에는 제작사, 고용주와 더불어 배포자 등 많은 관계자가 ‘점조직’으로 개입합니다. 그렇다면 불법 전단을 배포만 해도 처벌 대상일까요? 불법 전단,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처벌 대상인지 MBN 사실확인에서 알아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단을 배포하는 경우 처벌 대상일 수 있습니다.
먼저 건물 벽, 전봇대, 주택 현관 등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을 봅시다. 많은 소상공인이 효과적으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활용하는데요.
다른 사람 또는 단체 등의 집(거주지), 인공구조물(전봇대, 자동차 등)에 광고 홍보물을 붙이거나 끼우는 행위, 그림을 새기는 행위, 공공장소에 광고물을 부착·배포하는 행위 등은 모두 처벌받습니다. 이런 배포 활동은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9호에 의거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 지하철 열차 내에 불법 전단을 부착하는 모습(제공=서울교통공사) |
지하철도 마찬가진데요. 지하철 열차 내에서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9호와 철도안전법 시행규칙 제85조 제2항에 따라 지하철 내 광고물 무단 부착이 금지됩니다. 서울교통공사(서교공)는 불법 전단에 대응하기 위해 민원이 많은 오전 5~7시와 12~16시에 지하철 보안관을 집중 투입해 부착자를 단속하고 있습니다.
길에서 나눠주거나 뿌리는 전단 또한 불법일 수 있는데요.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구청에 신고하고 도장 받은 후 지정된 장소에서 배포한 전단만 합법입니다.
↑ 옥외광고물법 제5조 제2항 |
불법 전단은 크기에 따라 장당 5천 원 이상~5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자치구별로 과태료 기준이 정해지는데요. 특히 성매매 알선 전단 같은 음란 전단의 경우, 옥외광고물법 제5조와 청소년보호법 제19조에 의해 더욱 엄격한 처벌을 받습니다. 옥외광고물법 제20조에 따라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불법 전단은 제작·배포한 자에게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불법 전단을 제재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전단이 많은데요. 단속 현장은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흔히 선정적인 내용이 아닌 일반 홍보 목적의 불법 전단은 일회성인 경우가 대다수라 잡기 어렵습니다. 강남구청 도시계획과 도시정비팀 담당자는 “아파트에 부착되는 불법 전단만 수천 가진데 하나하나 조사할 인력이 안 된다”며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에만 해당 업체에 불법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전화한다”고 말했습니다.
↑ 특별사법경찰 불법 전단 단속 현장(제공=강남구청 도시계획과) |
선정적 불법 전단의 경우 특별사법경찰과 경찰이 단속하는데요. 선정적 불법 전단이 많은 강남구는 특별사법경찰과 강남·수서 경찰서의 합동 단속을 주 1회에서 2회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그럼에도 위축 심리로 인해 배포자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시정비팀 담당자는 “단속하는 과정에서 살포자가 과잉진압이라 느껴 문제가 된 적 있다. 상대가 빠르게 오토바이로 도망치다 보니 부상이 잦다”고 말했습니다. 구청 공무원들은 단속할 때 납으로 무장된 안전화와 정강이 보호대를 지급받아도 다치기 십상이고, 사고 나면 단속반 책임이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강남구청 추산 하루 2만 장이 살포되는데, 한 달에 평균 7건 미만으로 잡히는 정도입니다.
불법 전단 근절을 위해선 업소와 같은 고용주를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살포자를 잡더라도 고용주까지 잡긴 어렵습니다. 이들은 텔레그램 등으로만 소통하고, 전단도 지하철 사물함 등에서 받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겁니다.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도 유흥주점이 아닌 중개업소입니다. 전화를 걸면 또 다른 번호로 연락이 오며, 번호는 그때마다 바뀝니다. 구청 관계자는 “그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건 대포폰”이라고 말했습니다.
서교공도 현장 적발 어려움을 언급했습니다. 서교공은 불법 광고물 부착자들을 적발하면 경찰 고발을 하거나 철도안전법 제50조에 의거해 퇴거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도망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태형 서교공 고객 안전지원센터장은 “철도공사와 달리 서교공은 공권력이 없어 경찰이 올 때까지 무리하게 잡아 둘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배포자는 대부분 생계형 저소득층으로, 과태료를 부과해도 체납 상태로 남아 단속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하철 보안관이 수시로 단속하지만 열차 편성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 안전지원센터장은 “열차 순회를 강화하고 향후 인력 보강을
취재를 종합하면, 불법 전단을 배포만 해도 처벌 대상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점 불법 업체가 음지로 가는 만큼, 실제로 단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각 기관의 협력을 통해 단속 강화와 더불어 근절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정예림 인턴기자 chloej575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