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를 돌아봤다.
이 지역엔 2곳의 국경(검문소 개수는 그보다 많다)이 있다. 바로 홍콩과 마카오 국경이다. 물론 이 두 지역은 따지자면 중국의 영토이다. 하지만, 두 곳 모두 150년 이상 다른 나라 식민지로 있다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곧바로 본토와 일체화시키지 않고 일국양제를 택하면서 엄연히 국경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중국 선전시 남쪽에 위치한 사터우자오중잉제(沙頭角中英街)를 가 봤다. 선전시에 사터우자오라는 지역이 있는데, 아편전쟁과 그에 따른 난징조약의 결과로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졸지에 거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한쪽은 중(中)국 땅이, 반대쪽은 영(英)국 땅이 됐다고 해서 거리 이름이 중잉제(中英街/CHINA-ENGLAND STREET)가 된 것이다.
↑ 밤늦은 시간에도 선전-홍콩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 사진 왼쪽이 선전에서 홍콩으로, 오른쪽이 홍콩에서 선전으로 넘어오는 통로이다. / 사진 = MBN 촬영 |
적확한 비교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해방 이후 곧바로 38선이 그어지고, 그것도 모자라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5천 년을 함께 살던 땅이 어느 날 갑자기 분단이 됐을 때. 살던 마을이 둘로 쪼개지고 마을 사람들끼리도 만나지 못하게 됐을 때의 심정이 그 당시 사터우자오 사람들의 심정과 비슷했을까.
기자가 중잉제 국경검문소에 들른 시간은 밤 9시가 넘었을 때였는데, 그 시간에도 홍콩에서 선전으로, 또 선전에서 홍콩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엄연히 국경을 넘는 것임에도 이들은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가족끼리 얘기를 나누며 옆 동네를 가듯이 편하게 오가는 모습이 기자의 눈에는 상당히 낯설고 신기해 보였다.
↑ 이렇게 차로도 선전과 홍콩을 오갈 수 있다. 양쪽을 오가는 차량은 선전시 번호판과 홍콩 번호판을 모두 부착해야 한다. / 사진 = MBN 촬영 |
밤늦은 시간이라 선전에서 홍콩으로 넘어 갔다 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도시를 이동해 이튿날엔 마카오 국경을 갔다. 마카오와 국경을 맞댄 중국 도시는 선전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주하이(珠海)였다. 주하이에도 국경이 몇 곳이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되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공베이코우안(拱北口岸)이라는 곳이다.
기자가 검문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이미 많은 사람이 마카오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 주하이에서 중국 출국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중국 출국 후 마카오 입국심사를 마치면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 MBN 촬영 |
국경을 넘는 절차는 중국 출국→마카오 입국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별다른 절차도 없이 일사천리로 국경을 넘을 수가 있다. 이어져 있는 땅에 금을 하나 그어놓고 한 발짝만 내디디면 나라가 바뀐다고 생각하니 이 역시 또 신기하고 낯설었다.
↑ 주하이에서 마카오로 한 걸음 만에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자동차 운전석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 사진 = MBN 촬영 |
중국은 빼앗겼던 땅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래 서방 체제 아래 경제가 발전한 두 지역을 십분 활용해서 중국 경제 성장을 이루려고 했다. 선전과 주하이 등 국경을 맞댄 중국 도시들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교류를 활발하게 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뤘다.
선전과 홍콩, 마카오, 둥관, 광저우가 위치한 이 지역은 <주장 삼각주>라고 불리며 중국 경제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광둥성 역시 중국 31개 성‧시 중 GDP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을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세계 최장의 해상대교인 강주아오대교를 지었다. <(香)港珠(海)澳(門) 大橋>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주하이-마카오를 잇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 세계 최장 해상대교인 강주아오대교. 너무 길어서 사진 한 장에는 담을 수가 없다. / 사진 = MBN 촬영 |
우리나라는 대륙에 붙은 반도 국가이다. 대륙에 붙어 있으니 국경이 있어야 정상이건만, 지금 우리나라는 사실상 국경이 없다. 휴전선이 있을 뿐이다. 휴전선은 당연히 아무도 넘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전쟁이 잠시 멈춘 것뿐이니까. 이렇듯 국경이 없으니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기자 역시 여행이나 출장 중에 국경을 넘어본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번처럼 직접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은 처음 해봤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는 좁게 보면 남과 북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개성을 포함한 휴전선 일대에 왕래가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뜻할 것
그렇게 되면 경제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의 대한민국과 북한이 각각 존재하는 것보다 세계 무대에서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