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많은 콘텐츠가 출시되었고, 사랑받았으며, 흘러갔다. 2025년이 온 지금, 지난해 빠르게 스쳐 지나간 콘텐츠들에게 아쉬운 감이 남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2025년 다시 꽃 피우길 바라는 ‘역주행 기원’ 콘텐츠들을 선정했다.
최근 한 가수가 신규 앨범을 소개하며 꺼낸 얘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가요계에 싱글 앨범을 내는 추세가 많아지다 보니, 정규 앨범으로 출시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곡들은 대다수가 3분 남짓한 노래들이 많고, ‘미니 앨범’, ‘디지털 싱글’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기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들으려면 LP판이든, 카세트테이프든, CD든 A와 B면을 틀어야 했었다. 그만큼 수록곡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원하는 곡만 콕 집어 스트리밍을 할 수 있게 된 시대다. 남겨진 B면의 노래들을 소비하는 데는 나름의 애정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셈이 되었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흐름에 있어 ‘유행’이라는 기준점은, 그만큼 기묘하다. 하나의 개체가 선보여지고 공감을 얻기까지 소비자의 입장으로선 ‘순식간에’ 전파되며 이를 ‘흡인력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콘텐츠 제작자들의 입장에선 장기간 계획하고, 연구하고, 공들여 제작한 콘텐츠가 공개될 때 유행에 탑승해 빠르게 흘러가든, 탑승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든지 간에 늘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재발견, 역주행의 힘’ 얻을 만한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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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하 7집 리패키지 앨범 [GROWTH THEORY Final Edition](사진 C9엔터테인먼트 제공) |
국내 문화 시장에서는 ‘역주행’, ‘재발견’으로 정의되는 곡이 있다. 발매 후 오랜 시간이 흘렀던 곡들이 어떤 계기로 재조명되며 다시금 음원 시장 차트인을 하는 경우가 그것인데, 가수 EXID의 ‘위아래’, 브레이브걸스 ‘롤린’, 윤종신의 ‘좋니’,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등이 대표적인 역주행 곡이다. 지난해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APT.’가 흘러나올 때만 해도, 윤수일의 ‘아파트’를 흥얼거리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N Sync ‘Bye Bye Bye’,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 등의 해외 노래도 역주행했다. 그렇다면, 2025년 상반기, 다시금 역주행으로 주목받을 만한 콘텐츠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자는 지난 9월 발매된 윤하의 정규 7집 [GROWTH THEORY]를 꼽아본다. 정규 6집 [END THEORY] 이후 2년 9개월 만에 선보인 윤하의 정규 7집은 ‘소녀와 개복치,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장대한 여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녀가 여정에서 만난 다양한 주체들과 교감하며 깨닫게 되는 성장의 의미는 2024년 데뷔 20주년을 맞은 윤하의 성장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윤하는 이후 11월에 정규 7집 리패키지 [GROWTH THEORY: Final Edition]을 통해 정규 7집의 10곡, 신곡 3개를 더해 ‘성장 이론서’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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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인기 급상승 동영상’ 순위권에 오른 베이비복스 무대 영상, (아래) 베이비복스(사진 유튜브 채널 ‘KBS WORLD TV’ 화면 갈무리) |
그런가 하면, 2024년 연말 시상식에서 14년 만에 완전체 무대를 꾸미며 SNS상에서 ‘주변을 압도한 언니들’로 화제가 된 베이비복스(Baby V.O.X)의 곡들도 ‘역주행 바람’을 타길 바라본다. 지난 12월 14일 ‘2024 KBS 가요대축제’에서 5인조 완전체로 무대에 오른 베이비복스는 ‘겟 업(Get Up)’(1999), ‘우연(우울한 우연)’(2002), ‘킬러(Killer)’(1999) 무대까지 꾸몄고, 이후 KBS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무대 영상이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에 오르는 등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켜줬다.
다시 꺼내 보길 바라는 콘텐츠…책 『시적 정의』 & 영화 ‘빅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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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시적 정의』(사진 궁리출판) |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2024 노벨문학상의 주인공 한강 작가. 서점에는 작가의 최신작부터 초반 출간작까지 창고에서 꺼내어져 매대를 가득 채우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양귀자 작가의 『모순』,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등 출간된 지 오래된 도서들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2025년에는 2013년 초판이 나온 후, 지난 10월 새롭게 출간한 『시적 정의』(마사 누스바움 저 / 박용준 역 / 궁리 펴냄)를 주목해보자. 도서는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이자 법철학자로 유명한 저자가 문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문학과 문화적 상상력이 어떻게 정의로운 공적 담론과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법과 정의가 강자의 힘에 굴복해버린 시대에 저자는 문학책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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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토리’ (사진 (주)마인드마크) |
재개봉 또는 OTT에서 화제가 되길 바라는 영화도 있다. 2024년 8월 개봉한 국내 영화 ‘빅토리’는 역주행 목전까지 왔지만, 흥행에는 아쉽게 실패한 작품이다. 1999년 거제, 춤만이 전부였던 ‘팔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전학 온 치어리더 ‘세현’(조아람)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9명의 멤버가 모여 탄생한 부서 ‘밀레니엄 걸즈’는 거제상고 축구부를 위한 치어리딩 공연을 시작으로, 응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빅토리’는 MZ세대가 주목한 MG(밀레니엄 걸즈)의 사랑스러운 열정과, 음악과 문화가 꽃 피던 1990년대를 만나볼 수 있는 하이틴 감성 영화로, 최근 OTT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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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노라’ 포스터(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
해외작 ‘아노라’는 지난 11월 개봉한 영화다. 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는 자신의 바를 찾은 철부지 러시아 재벌2세 ‘이반’을 만나게 되고, 충동적인 사랑을 믿고 신분 상승을 꿈꾸며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도 잠시,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반’의 부모님이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되며 미국에 있는 하수인 3인방에게 아들의 혼인무효소송을 진행할 것을 지시하고, 이반은 부모님이 무서워 아노라를 버린 채 홀로 도망을 친다. 이반을 찾아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아노라와, 이반을 찾아 혼인무효소송을 시켜야 하는 하수인 3인방의 대환장 발악이 시작된다.
영화는 로튼 토마토 신선도 98%를 기록,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또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 ‘2024년 추천 영화’ 중 하나이자, 이동진 평론가가 꼽은 ‘2024 외국 영화 TOP 10’ 중 하나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서둘러 필람 리스트에 넣어보자.
More Insight ‘추억의 과자’도 역주행 흐름을 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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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오리온) |
어른이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의 상품을 소비하는 ‘키덜트족’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월 오리온은 과자 ‘초코송이’와 ‘고래밥’이 세대를 넘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역주행 과자’의 인기는 어린 시절의 감성을 추구하는 2030세대들이 늘면서 먹거리에서도 추억이 담긴 간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SNS와 커뮤니티에서도 ‘소풍간식 초코송이 추억 소환’, ‘추억 돋는 고래밥 이제는 딱 안주’ 등 키덜트
족들의 구매 인증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초코송이는 출시 40년 만에 처음으로 월평균 매출 20억 원을 넘어섰고, 고래밥은 지난 1~9월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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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
사진 각 브랜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2호(25.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