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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청도에서 시작해 경주 지나 포항까지…2박 3일의 가을 여행

기사입력 2024-11-01 17:08 l 최종수정 2024-11-04 16:50

2박 3일 동안 가을을 여행했다. 높은 산 암자도 찾았고 천년 세월을 견딘 불상 앞에서 소원도 빌었다. 바다를 따라 드라이브도 즐겼고 꽃무릇 선연하게 핀 식물원에도 들렀다. 여유롭고 행복한 가을 여행이었다.

해뜰 무렵 호미곶
↑ 해뜰 무렵 호미곶
10월 여행지는 어디가 좋을까. 하동이나 고창, 해남처럼 3월에 어울리는 여행지가 있다면 분명 10월에 어울리는 여행지가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단풍이 주 목적인 여행은 싫다(오해 마시길, 가을 절정의 단풍 여행도 좋은 여행 아이템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아주머니 사이에 섞여 떠밀리며 다니는 건 내 취향은 아니다.
어디가 좋을까….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시선이 문득 경북 청도에 머물렀다. 가만있자, 청도에 뭐가 있더라? 청도 하면 비구니 사찰 운문사가 먼저 떠오른다. 십 년 전쯤인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절집 풍경은 뚜렷이 기억나는 게 없지만 운문사 앞 중국집에서 ‘사찰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은 난다. 돼지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식감을 살렸다고 했다.
청도에 한 번 가보자. 여행작가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건, ‘일단 가 보면 거기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청도에 가려고 하니 어느 선배가 내게 ‘대운암’이라는 암자가 그렇게 좋다고 했던 것이 얼핏 떠오른다. “서거정이 운길산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동방 제일이라고 했다지만, 대운암에 가봤다면 대운암이 세상 제일이라고 했을 거야.”
발 아래 구름을 둔 암자
청도-대운암  관음전 가는 길
↑ 청도-대운암 관음전 가는 길
대구를 지나니 곧 청도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차창을 열고 달리니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떠나오기 전 기모가 들어간 후드티를 부랴부랴 꺼내 입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도 읍내를 지나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대운암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시멘트 길이다. 맞은 편에서 차가 내려오면 비키기가 조금 어려울 정도로 좁은 임도다. 대운암까지는 3킬로미터가 남았다. 기어는 수동, 1단과 2단으로 바꿔가며 조심스럽게 오른다. 한쪽이 온통 절벽인데 안전시설이 없어 긴장을 하며 운전을 해야 한다.
반쯤 왔을까, 왼쪽 차창 밖으로 가을 들판과 강이 펼쳐진다. 흔히들 용각산(龍角山) 대운암이라고 하는데, 용각산은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대운암이 들어앉은 산은 오례산(烏禮山)이다. 해발 600미터 정도의 그다지 높지 않다. 대운암은 오례산 500미터 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은 해발 1,000미터급에 뒤지지 않는다.
제법 크다. 절에 올 때마다 어떻게 이런 곳에 터를 잡았나 싶다. 주차장을 지나면 대운암 경내인데,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해우소다. 맞배지붕의 조그만 건물인데 옆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대운암 도로 개설과 전기 가설 불사 공덕비다. 이 높은 곳까지 도로를 내고 전기를 끌어왔으니 그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
대운암 범종각 벤치에서 바라본 풍경
↑ 대운암 범종각 벤치에서 바라본 풍경
경내에 들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발 아래로 향한다. 중앙고속도로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지고 그 뒤로 산들이 겹겹이 포개어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교각이 지나고 그 아래로 강물이 흘러가는데 청도천과 운문천, 밀양천이 합쳐지는 한내라고 한다.
대운암 경내에 들어선다. 관음전이 주전이고 그 아래로 지혜의 보살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전이 서 있다. 관음전 뒤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이 자리한다. 대운암은 기도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늘 가까운 곳이라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재도 많이 지낸다고 한다.
관음전을 등지고 바라보이는 당우가 종무소 겸 세심당(洗心堂)이다. ‘마음을 씻는 집’이라는 뜻이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실(茶室) 용도로도 사용된다. 관음전 앞 왼쪽, 독성각이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타 있는 건물의 형세가 독특하다.
대운암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1868년(고종 5) 부암선사가 좌선 수도하던 중 현몽을 꾸고 창건했다고 한다.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인데 불에 타 사라진 것을 2000년에 새로 지었다. 1930년대에 대운암 중건 당시 경산 반룡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각을 지나 관음전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산령각이 나오고, 산령각을 등지고 서면 관음전과 종무소 용마루 너머로 대운암 주변 풍경이 펼쳐진다.
대운암 관음전,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진 독성각
↑ 대운암 관음전,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진 독성각
다시 관음전 앞에 서 본다. 모든 사찰은 본존불이 앉아 있는 눈높이를 기준으로 풍경을 봐야 한다고 했으니 관음전 입구 댓돌 앞에서 건물을 등지고 서 본다. 종무소 용마루 너머로 겹겹이 포개진 산과 가을 구름이 걸려 있다. 와, 좋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대운암, 한자로는 ‘大雲庵’이라고 쓴다. 산 아래에서 보면 암자가 큰 구름(大雲)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범종각 옆에는 나무 벤치가 있다. 이곳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관음전에 날아온 풍경소리가 귓전을 지나 먼 산등성이로 퍼진다. 처음에는 여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으로 가서 주민들과 만나고, 시장통을 기웃거리고, 향토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청도에서 햄버거를 먹어도 내가 좋으면 되고, 알려지지 않은 암자에서 내가 감탄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여행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니까. 여행은 머물러도 여행이고, 지나가도 여행이다. 그나저나 대운암의 범종 소리는 어떨까 궁금하다. 다음에 온다면 운이 좋아 범종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금장대에 올라 바라보는 경주 풍경
경주로 간다.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다. 가을 들판 사이로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도로를 이리저리 따라간다. 경주는 지금까지 여행을 가장 많이 간 곳이다. 대릉원과 첨성대, 교촌마을 등이 몰려 있는 시내와 불국사, 석굴암,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권까지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도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갈 때마다 좋다. 누군가 내게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경주를 꼽을 것이다.
이번에는 금장대(金丈臺)에 가보기로 한다. 금장대는 몇 번이나 지나치긴 했다. 경주에서 형산강을 따라 포항으로 향하다 보면 강 건너 야트막한 언덕에 웅장한 누각이 하나 서 있는 것이 보이곤 한다. 그때마다 저곳에 가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한번은 가 봐야지 마음먹었던 곳이다. 뚜렷한 목적 없이 떠나온 여행이라 일정에 부담은 없다.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경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금장대는 기러기도 쉬어갔다는  곳이다.
↑ 경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금장대는 기러기도 쉬어갔다는 곳이다.
금장대는 경주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절벽 위 정자다. 여행객보다는 경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산책도 즐기고 운동 삼아 오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대’(臺) 자가 붙은 건물은 대부분 전망이 좋다고 보면 되는데, 금장대도 그렇다. 옛날부터 경주에는 ‘삼기팔괴’(三奇八怪)가 있었다.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을 일컫는다. 삼기는 금척(金尺)과 옥적(玉笛), 화주(火珠)다. 금척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았다는 금으로 만든 자(尺)를 말한다. 옥적은 옥으로 만든 피리이며, 화주는 선덕여왕이 지녔던 수정 돋보기다. 금장대는 팔괴 중 하나다.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곳 금장대에 내려앉아 쉬어 간다고 하며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고 이름을 올렸다. 신라 제20대 자비왕(458~479) 때 을화(乙花)라는 기생이 왕과 연희를 즐기다 실수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의 배경이기도 하다.
나는 기러기는 아니지만 쉬어 가야 할 이유가 많은 사람이므로 금장대에서 앉아보기로 했다. 누각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으니 경주 시가지와 남산이 바라다보인다. 형산강이 흘러가는 먼 곳에서 분홍빛 노을이 밀려오고 있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밤에는 금장대 가까운 호텔에서 묵었다. 경주처럼 큰 관광지는 숙박 걱정이 없어 좋다. 비싸지 않은 금액의 호텔이었는데 서비스가 좋았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며 모르는 곳을 헤매다가 지친 몸으로 숙소에 들었을 때 청결하고 서비스가 좋으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다음날 일찍 대릉원과 월성 근처를 걸었다. 내가 경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다. 월성 둔덕에 오르면 경주가 내려다보인다. 이른 아침에는 기와지붕 위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볼 수 있다. 천 년 전 신라의 경주도 이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월성은 한창 발굴 작업 중이었는데 작업이 끝나면 꼭 다시 와보리라고 다짐했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면
영지석불좌상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 영지석불좌상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오전에 영지석불좌상을 보고 오후에 포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경주에 수도 없이 왔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아직 수두룩하고, 영지석불좌상도 그중 한 곳이다. 어제 저녁 금장대에서 만난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지석불좌상에 대해 듣게 됐다. “거기 한번 가봐요. 도로 옆에 있어 찾기도 쉬워요. 우리 안사람이 거기 가서 자주 뭘 빌더라고. 부처님이 잘 들어주시나 봐.”
부처님이 잘 들어주신다기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가기로 했다. 영지는 아사녀가 빠져 죽은 ‘그림자 못’이다. 김대건이 불국사를 지을 때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불렀다.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쌓기 시작할 무렵, 오랜 세월 남편과 떨어져 있던 아사녀가 아사달을 만나기 위해 신라로 왔다. 하지만 불국사 스님은 여자는 부정하다 해서 남편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대신 ‘공사가 끝나면 영지 못에 불국사가 비칠 것인데 그때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 했다. 아사녀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매일 연못에 나가 기다렸지만 불국사 그림자는 연못에 비치지 않았고 그녀는 끝내 그림자 없는(無影) 못속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석가탑이 완성되고 아사달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영지로 달려왔지만 아사녀는 없었고 그 역시 아내가 있는 영지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無影塔), 그림자가 없는 탑이다. 아사달이 달려왔을 때 영지 물속에서 바위가 하나 올라왔는데 아사달이 죽기 전 그 바위로 만든 불상이 영지석불좌상이라고 한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깃들인 영지석불좌상. 영지석불좌상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다.
↑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깃들인 영지석불좌상. 영지석불좌상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다.
석불좌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4미터가 넘는 높이. 몸체와 대좌,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례가 좋아 보였다. 건장한 신체와 허리, 양감 있는 무릎 표현 등이 통일신라 석불 양식이다. 부처의 왼손은 결가부좌로 앉은 무릎 위에 부드럽게 놓았는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것이며 오른손 손가락을 가지런히 해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모습 등이 석굴암의 본존불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빗물과 바람결에 닳은 탓인지도 모르지만 마모가 심했다. 같은 자리에서 천 년 넘는 세월을 견딘 증거가 아닐까. 혹자는 누군가 일부러 훼손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원래 미완성의 불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광배(후광) 일부가 상해 있는데, 한국전쟁 때 이 지역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불상을 과녁으로 사격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탄 자국은 후일 보수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불상이 아사녀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믿고 있다. 눈도 코도 입도 흐리지만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것이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부처의 몸은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어져 있는데, 이 다정스러운 자세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부처 앞에서 삼배를 드렸다. 빌 것이 참 많았지만 가장 간절한 딱 하나만 말씀드렸다. 무언가 이루고 싶은, 혹은 빌고 싶은 간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생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금도 사연 많은 사람들이나 임신이 잘되지 않은 부부가 이 불상을 찾아와 정성을 들인다고 한다.
식물원과 온천에서의 느긋한 시간
기청산식물원을 상징하는 나무는 땅 위로 뿌리가 솟아 있다. 갖가지 식물과 나무로 생기 가득한 기청산 식물원 탐방로
↑ 기청산식물원을 상징하는 나무는 땅 위로 뿌리가 솟아 있다. 갖가지 식물과 나무로 생기 가득한 기청산 식물원 탐방로
포항 기청산식물원으로 갔다. 야생화를 비롯해 토종 들풀, 수목, 각종 꽃 등 총 2,5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만나는데, 그 나무 둘레에 뿌리가 송이처럼 솟아나 있는 것이 보인다. 뿌리로 숨을 쉬는 형태로 이 나무가 기청산식물원의 터줏대감이다. 내가 갔을 때는 꽃무릇이 한창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마다 선홍빛 꽃무릇이 가득했다. 어디선가 날아든 새소리가 꽃무릇 융단 위에 흩어지곤 했다.
꽃무릇 사이를 걷다가 기청산식물원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찾았던 것이 기억났다. 봄이었나…. 아이들은 연두색 나뭇잎을 만져보기도 하고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잎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 사이 세월이 흘렀고,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던 그 아이들은 훌쩍 자라 청년이 되었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강물처럼 세월은 흘러 흘러 앞으로만 가는 것일까. 나는 떡갈나무 둥치를 쓰다듬으며 뜬금없이 “가을이 와서 숲 냄새가 깊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땐 딴소리를 하게 된다.
포항 호미곶에 호미곶해수탕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지금 따뜻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다. 오십 넘고 나서부터는 온천이 있으면 꼭 간다. 예전엔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것 같아 온천 같은 곳에 갈 엄두를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천에 가는 것이 여행을 가장 잘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긴다. 여행 다음에는 일상이 또 이어지니까 되도록이면 피로는 풀고 가는 것이 좋다.
호미곶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렸다. 날씨를 살펴보니 하루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비가 와서 오히려 좋았다. 호미곶에 왔다고 해서 꼭 일출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비 오는 날씨 속에서 이처럼 온천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은 여행이 아닐까.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졸음이 느긋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Tip 청도 여행 정보
청도역 앞 추어탕 거리, 장기식당 소머리국밥
↑ 청도역 앞 추어탕 거리, 장기식당 소머리국밥
청도에서는 추어탕을 먹었다. 청도역 앞에 추어탕 거리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전라도식 추어탕과는 다른 경상도식 추어탕을 낸다.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청도천과 동창천에 사는 꺽지, 메기, 동사리 같은 잡어를 같이 넣어서 끓인다. 제피가루를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 강남반점에서는 사찰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영지석불좌상은 앞에는 차를 댈 만한 넓은 공터가 있

다. 호미곶해수탕은 호미곶해맞이광장과 가까운데 아침 6시에 문을 연다. 기청산식물원에서는 내연산계곡이 가까워 가을 트레킹을 즐겨도 좋다. 아이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코스가 쉽다. 포항에서는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장기식당 등이 유명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2호(24.10.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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