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은 전체 면적이 제주도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작은 섬이지만 각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보인다. 그 면면을 살피다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지러이 섞여 있는, 아직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번에는 남부와 북부를 둘러보았다.
↑ 베니스 운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의 호수 , 인상적인 거친 파도와 코코넛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북부의 외딴 해변, 옹랑 비치 |
↑ 마네킹의 움직임을 통해 전쟁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교도소 내부(좌), 교도소에 수감된 포로를 감시했던 감시탑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우). |
↑ 1949~1950년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건설된 푸꾸옥 교도소와 촘촘하게 교도소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기 위한 시설로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 당시 활동했던 프랑스의 많은 혁명가를 포함해 약 4만 명의 수감자를 수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교도소의 면적은 12만 1,000평(약 40만㎡)에 걸쳐 있으며, 구금 시설과 고문 시설, 지하 터널 등으로 구분된다.
↑ 교도소 외부에 자리한 구금 시설과 고문 시설 |
교도소는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된 이후 폐쇄되었다. 1995년 베트남 문화정보부로부터 국가유적지로 인정받아 오늘날 박물관과 기념관으로 바뀌어 방문객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알리는 장소이자 역사적 유적지로 사용되고 있다.
↑ 땅굴을 통해 탈출하는 포로들의 모습을 재현한 지하시설 내부 |
↑ 이탈리아 섬 마을을 연상케 하는 선셋타운의 건축물 |
도심인 중부를 여행할 때만 해도 이 섬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푸꾸옥과 세계 최대 규모의 커피 체인점은 상반된 이미지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곳, 남부의 또 다른 명소가 바로 선셋타운(Sunset Town)이다. 택시가 선셋타운 인근에 다다르자 주변 배경이 황급히 화면 전환이 되듯 완전히 다른 얼굴을 내보였다. 섬의 남서쪽 기슭에 자리한 이 타운은 푸꾸옥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 선셋타운 해변 풍경, 해변에서 바라본 키스 브릿지가 길게 이어져 있다. |
그러나 오직 ‘관광’에 초점 맞춰진, ‘관광객’만을 위한 시설과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타운의 인상을 다소 인공적인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타운의 지명처럼 이 지역은 최고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서, 이곳의 랜드마크인 키스 브릿지(Kiss Bridge)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조명 쇼가 열린다. 해변 야시장은 물론 다양한 축제와 파티 등이 곳곳에서 일몰과 함께 펼쳐지며 화려한 빛과 소음으로 타운을 물들인다.
↑ (좌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푸꾸옥에 하나뿐인 스타벅스가 선셋타운에 위치해 있다. 선셋타운의 메인 거리에 자리한 야외시장, 그랜드 월드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
푸꾸옥 북부에도 베트남 정부의 성공적인 투자와 개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심이 되는 곳이 그랜드 월드(Grand World)다. 선 그룹이 선셋타운을 조성한 것처럼 그랜드 월드에도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대표기업인 빈펄(Vinpearl) 그룹에 의해 관광단지가 건설되었다. 2021년 4월에 대대적으로 문을 연 그랜드 월드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및 쇼핑단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적인 시설과 인프라가 주는 화려함에 비해 유명세를 얻지 못했던 이곳은 엔데믹의 여파로 인해 최근 들어 베트남 현지인들 사이에서 여행하고 싶은 장소 일 순위로 꼽히는 데다 세계 각지에서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휴가지로 찾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 (위로부터)고대 베트남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띤 호아 공연장 내부 전경, 울창한 나무와 예술작품이 있는 현대미술공원, 띤 호아 공연장 내부에 자리한 예술문화 상점, 바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장엄한 바다 풍경. |
그랜드 월드에 위치한 시설에는 ‘베트남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 붙는데, 테디 베어 박물관에 이어 또 하나가 띤 호아(Tinh Hoa) 공연장이다. 830만 달러(한화 약 110억 원)를 투자해서 만든 베트남 최대 규모 공연장이다. 1만 1,200평방미터의 공간에서 최신기술로 리얼하게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압권인 곳이다. ‘Essence of Vietnam Show’라 명명된 베트남의 정체성이 담긴 민속 예술 공연이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 (좌)뱃사공이 이끄는 곤돌라를 타는 것이 그랜드 월드에서의 대표적인 즐길 거리다. (우) 베니스 운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의 호수. |
일단 후자를 택했다. 개척자의 정신으로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안고 ‘외딴 해변’을 찾아 떠났다. 북부에 위치한 서쪽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옹랑 비치(Ong Lang Beach)는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 인상적인 거친 파도와 코코넛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북부의 외딴 해변, 옹랑 비치 |
푸꾸옥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섬이다. 개발은 현재진행형이며, 개발로 인한 결과물은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를 가로지르는 극과 극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섬의 중부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심어준 섬의 북부와 남부. 개발에 따른 커다란 변화는 현대화된 섬을 만든 배경이 되었지만 이곳 섬만의 색채나 특징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풍경에 아쉬움 또한 여행의 일부분으로 남았다.
↑ 마이 조(Mai Jo), 하노이 코너(Hanoi Corner), 소울 스페셜리티 커피(Soul Specialty Coffee) (왼쪽부터) |
옹랑 비치에서 약 2km가량 떨어진 곳에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 자리한다.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주택가 주변에 중급의 리조트와 호텔이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문을 여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이 중 최고의 인기 식당이 바로 마이 조다. 질 좋은 해산물 요리의 맛이 가히 압도적이다. 특히 오징어 속에 다짐육을 넣어 오븐에 구워낸 음식이 인기 메뉴로 꼽힌다. 부드러운 오징어 살과 입맛 돋우는 향신료가 적절히 배어든 다짐육의 조화가 맛의 질을 높인다. 이 요리를 다시 맛보고 싶어 마이 조 식당만 세 번을 방문했을 정도. 다진 마늘과 기름을 넉넉히 넣고 볶은 모닝글로리도 밥과 함께 먹기 좋다. 코코넛크림을 듬뿍 넣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의 커리, 새우와 랍스터 구이 등의 해산물 요리도 추천할 만하다.
위치 Đường Lê Thúc Nha, Ông Lang, Phú Quốc, Kiên Giang
하노이 코너(Hanoi Corner)
푸꾸옥 현지인들의 살아가는 풍경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면 옹랑 비치 주변 골목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처 없이 걷다 마을의 아지트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가 우연히 하노이 코너를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첫 방문 때 라떼를 마셨다가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맛에 홀딱 반해 곧장 음식 주문을 했다. 베트남의 로컬음식인 각종 쌀국수부터 피자와 샌드위치 등의 서양 음식까지 메뉴가 다양한 데다 맛도 일품이다. 특히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는 국물 맛이 진하고 깔끔하며 치킨 샌드위치는 이곳의 가장 인기 있는 브런치 메뉴로 꼽힌다. 크리미한 라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맛볼 것. 코코넛 커피도 진하면서 달지 않아 호불호가 없는 편이다.
위치 Tổ 3, Ông Lang, Phú Quốc, Kiên Giang
소울 스페셜리티 커피(Soul Specialty Coffee)
2018년 8월 창업한 소울은 베트남에서 스페셜리티 커피를 재배하고 유통하는 대표적인 회사다. 베트남 중부 고원 지대에 위치한 부온 마 투옷(Buon Ma Thuot)에서 자라는 커피 콩을 기반으로 재배 과정부터 수확, 예비 가공까지 진행하며, 로스팅 기술부터 완벽한 커피를 만드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커피 한잔에 맛과 예술, 가치를 담고 있는 곳이다. 특히 농민과 농가와의 공정거래를 추구한다. 푸꾸옥 그랜드 월드점은 하노이와 호치민, 다낭에 이어 2024년 2월 소울의 네 번째 쇼룸이자 커피 바로
위치 8VG5+G5W Grand World, IN0740, Đông Dương 2, Phú Quốc, Kiên Giang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1호(24.10.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