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나 지금 정색하는 거다냥”... 길냥이의 심기

꼬리 흔드는 것도 불쾌함의 표현일 수 있어
귀 젖히면 접근하지 말아야

밥을 챙긴 지 3년 넘은 길냥이가 있다. “츄르 먹자” 하다가 ‘츄르’라고 부르는데, 경계심이 심해 털끝 한 번 못 스쳐봤다. 지난 봄 천신만고 끝에 포획해 중성화를 시켰다. 그런 뒤 밥을 먹으러 오면 부쩍 나를 노려보며 꼬리를 바닥에 탁탁 내리친다. 이럴 땐 얼른 사라져 드리는 게 답이다.

개의 기분을 가늠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좋고 싫고를 즉각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편이라. 그런데 고양이는 잘 모르겠다. 설렁설렁 흔드는 꼬리가, 가늘게 뜬 눈이 어떤 기분을 나타내는지.
특히 야생성과 독립성이 강한 길고양이들은 몸짓과 표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낮추고 경쟁자나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물론 기분을 드러냄으로써 생존을 도모하기도 한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사나 호의를 내비쳐 불필요한 싸움을 막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인간에게는 다소 복잡미묘하게 인식될 수 있다.

↑ 사진=언스플래시

‘츄르’가 꼬리를 바닥에 내리치는 것은 물론 “지금 내가 좀 언짢아”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양이가 꼬리를 빠르게 좌우로 흔드는 것도 불쾌하다는 뜻이며, 꼬리를 낮게 내리거나 크게 부풀리면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의미다. ‘츄르’도 중성화 과정에서 경험한 극심한 두려움과 깊은 배신감이 나를 보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게 아닐까. 밥은 먹고 싶지만, 밥 주는 인간은 영 못마땅한 것이다.
이 밖에도 고양이가 기분 나쁠 때 보이는 분명한 행동 표현들이 있다. 귀를 뒤로 젖히고 눈빛이 날카로워진다면 더 이상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고양이가 사냥이나 공격하기 전에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므로, 곧바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 갑자기 짧고 빠르게 그루밍하는 것도, 머리를 짧게 한 번 흔드는 것도 고양이가 기분이 나쁘고 불편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익히 아는 등털 곤두세우기와 송곳니를 드러내고 하악질하기도 같은 심경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나처럼 고양이를 잘 모르면서 좋아하는 이들은 길냥이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접근이나 행동을 삼가고,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지 기민하게 알아채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느닷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같지만, 고양이는 이미 충분히 불쾌한 의사를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천에 위험 요소가 널린 길냥이는 평소 높은 긴장감과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이쪽으로선 호의와 관심의 표현이라도, 고양이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느낄 수 있다.
길냥이를 예뻐하는 건 좋지만, 그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냥 보기만 하거나 먹이를 준 뒤 총총 사라져 주는 것이 더 좋다. 꼬리와 귀, 털 등으로 그들의 심기를 잘 살피면서 말이다.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0호(24.10.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