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상 베트남보다 캄보디아에 더 가까운 섬, ‘베트남의 제주도’라 불리는 푸꾸옥을 찾았다. 우기의 섬 날씨는 하루 종일 지겹도록 비를 뿌렸다. 열대성 소나기를 예상하고 갔지만 시도 때도 없이 땅을 적시는 빗물에 여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푸꾸옥 중부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사원과 야시장, 선셋 비치 등을 둘러보며 여행의 이유를 써 내려갔다.
↑ 절벽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바다 풍경 |
↑ 푸꾸옥 중부 도심 풍경, 푸꾸옥의 중부에 위치한 두옹동 강 풍경 |
그러니까 푸꾸옥(Phu Quoc)에 가기 전 활자로 접한 베트남의 우기 정보는 이러했다. 하루 중 스콜만 잘 피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선 우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시기에 베트남 남서부에 위치한,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섬, 푸꾸옥에 발을 들였다.
공항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추적추적 땅을 적시는 빗물이 여행자를 먼저 반겼다. 이어 호텔로 가는 차 안, 택시기사의 말에 따르면 밤새 내린 비가 계속해서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창 밖 상황을 보니 쉽사리 그칠 만한 비가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빗줄기의 굵기만 여러 번 달라졌을 뿐, 그렇게 여행자를 반긴 비는 하루가 저물고 난 뒤에도 끝도 없이 땅을 적시고, 여행의 시간을 멈춰 세웠다.
결과적으로 일주일간 푸꾸옥을 여행하면서 몸소 체득한 이 섬의 우기정보는 다음과 같다. 하루에 여러 번, 자주 스콜이 퍼붓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양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스콜만 피하면 될 것이란 애초 생각은 이러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고, 일정 내내 하늘을 뒤덮은 까만 먹구름과 그 사이로 쉴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의 하모니를, 뜻하지 않은 날씨와 여행의 불협화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 지름길로 활용되는 옛 공항 활주로 |
이와 관련 베트남 정부는 태국 푸껫, 인도네시아 발리, 필리핀 세부와 같이 푸꾸옥이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섬으로서 입지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푸꾸옥은 베트남 현지인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얻었던 로컬 섬에 불과했지만 베트남 정부의 투자와 개발, 노력에 힘입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작금에는 세계적인 휴양지로의 성장을 기대해 봄직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는 해도 푸꾸옥의 전체 면적은 제주도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작은 섬이다. 도심이라 일컫는 중부와 북부 및 남부 세 개의 지역으로 나뉘며,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 푸꾸옥 여행의 시작은 중부에서 출발한다.
↑ 푸꾸옥 중부 로컬 시장, 푸꾸옥의 중부에 위치한 두옹동 강 풍경 |
딘까우 사원의 시작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섬에 어부들이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했을 당시의 어느 날, 바다로 일을 하러 나간 어부들이 예상치 못한 큰 파도를 맞닥뜨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다 어귀에서 커다란 바위 하나가 솟아오르는 것을 본 어부들은 이를 통해 해변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에서 등장한 바위가 바로 딘까우 사원을 떠받들고 있는 초석이다. 당시 바위의 신성함을 느낀 섬 주민들은 곧장 바위 위에 사원의 형태를 세웠고, 수백 년이 흐르면서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단행해 현재의 사원과 등대가 합쳐진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전설의 영향으로 ‘바위 사원(Rock Temple)’이라고도 불린다.
↑ 북부베트남 전통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딘까우 사원, 사원 한편에 자리한 등대 |
↑ 딘까우 사원 입구 전경 |
↑ 푸꾸옥 야시장 입구 전경, 비가 그치고 여유를 되찾은 야시장 풍경 |
곧장 콜택시를 불러 한달음에 야시장에 도착, 그야말로 숙소에서 야시장까지 순간 이동했다. 야시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푸꾸옥을 찾은 관광객이 죄다 야시장에 집합한 것마냥 왁자지껄 소음과 소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시장을 찾은 손님이 차고 넘쳐나니 장사하는 상인들의 신명 나는 목소리도 소음에 힘을 보탠다.
↑ 야시장에서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품목은 첫째도 둘째도 먹거리다. 해산물을 굽거나 튀긴 요리, 망고나 파파야 등의 열대과일로 만든 달콤한 디저트 등이 인기다. 시장에는 진주를 파는 상점도 꽤 눈에 띈다. 푸꾸옥은 20여 년 전 호주와 일본 전문가들에 의해 양식 진주 산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현재 푸꾸옥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역에 양식 진주 공장이 자리한 건 이러한 영향 때문이다. 오늘날 푸꾸옥은 ‘진주섬’이라 불릴 만큼, 어업과 농업, 관광 다음으로 진주 산업이 섬의 경제를 책임진다.
↑ 선셋 비치로 가는 길 |
중부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해변인 선셋 비치(Sunset Beach)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궂은 날씨가 선사하는 행운의 그림자는 고요의 바다를 비춘다. 그 끝자락에 형성된 고요의 해변, 적막함이 감돌지만 쓸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드넓은 모래사장을 따라 발을 뗀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모래의 축축함이 발을 타고 무릎에까지 닿는 기분이다.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축축함이 촉촉함으로 바뀌어가고 어느새 내면에까지 마음을 적신다. 기후에 따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여행의 최적시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배운다. 어차피 개인의 여행이자 개인의 경험이 일반적인 개념일 리 없지 않는가. 오로지 나에게 초점 맞춰진 이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을 산책하며 개인의 사고에 집중한다. 선셋 비치에서 찾은 여행의 이유와 목적이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 선셋 비치로 가는 길, 고요한 해변에서 개인의 시간을 향유해본다. |
↑ 안바카페(Anba Café) |
사실 ‘안바카페’는 푸꾸옥에서 워낙 유명한 카페다. 현지인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용’ 카페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저 잘 차려놓은 모던한 카페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작스레 맞닥뜨린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 인근에 있던 안바카페를 찾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방문이 ‘외국인 관광객용’ 카페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코코넛크림커피를 맛보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크리미한 목넘김이 완벽한 코코넛 커피가 바로 안바카페에 있었다. 적절한 단맛을 품고 있는 코코넛크림을 먼저 한 모금 들이키면 밑에 깔려 있는 진한 커피가 뒤따르는데 그 조합이 원더풀 그 이상이다. 그러니 크림과 커피를 섞어 마시는 오류를 범하지 말 것.
↑ 분짜 하노이(Bun Cha Hanoi) |
식당 이름처럼 분짜 전문 식당이다. 분짜는 쌀국수의 일종으로, 국수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고수 잎 등의 각종 허브와 상추 및 숙주나물 등의 채소를 새콤달콤한 느억 쩜(Nuoc Chom)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북 베트남 음식이지만 이제는 베트남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분짜 식당을 흔히 볼 수 있다. 푸꾸옥에도 분짜 식당이 여럿 있는데, 그중 트란 헝 다오 121번지(121 Tran Hung Dao Street)에 위치한 ‘분짜 하노이’가 대표적이다. 분짜의 핵심인 느억 쩜 소스 맛이 꽤 담백한 편이다. 다소 심심한 듯한 소스 맛이 오히려 양념된 고기와 국수, 야채와 잘 어우러져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 아티산 누들(Artisan Noodles) |
숙소 직원의 추천으로 들른 곳이다. “쌀국수 대신 다른 스타일의 국수를 맛보고 싶다면 ‘아티산 누들’을 꼭 가보라”고 직원은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길거리 한 편에 포장마차처럼 차려진 모습이 단박에 맘에 들었다. 다만 아티산 누들은 무조건 한낮을 피해 갈 것. 날이 너무 더워 음식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대낮에 국수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직원이 언급했던 다른 스타일의 국수라 함은 중국과 홍콩에 가까운 맛이었다. 간장이나 두반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에 면과 고기, 야채가 한 그릇에 담겨 나온다. 고기 종류는 소, 돼지, 닭 중에 선택 가능하다. 국수 한 그릇 가격은 한화 기준 약 2,000원 안팎으로 저렴하다.
↑ 메오키친(MEO Kitchen) |
반쎄오는 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와 해산물 등을 얹어 반달 모양으로 접어 부쳐낸 베트남의 대표음식이다. ‘메오키친’이 유명세를 얻은 건 반쎄오 때문이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사이즈가 압도적이다. 1인분이라고 하지만 둘이서 먹어도 남을 만큼 거대한 크기가 특징. 밀가루 반죽만 큰 게 아니라 속을 채운 채소나 해산물도 넉넉히 들어가 있어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반쎄오를 싸서 먹는 각종 쌈 채소도 풍성하게 제공된다. 메오키친은 어느 시간대에 가도 문전성시를 이루기 때문에 웨이팅은 필수다. 쌀국수와 해산물 볶음밥, 꼬치구이도 추천메뉴. 음식 양이 워낙 많아 혼자보단 단체에 적합한 식당이다.
↑ 반미 사이공(Banh Mi Sai Gon) |
반미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게트 빵 때문이다. 빵 안에 내용물보다 빵에 집착하는 나 같은 부류에게는 무조건 바게트의 신선함이 맛을 좌우한다. 트란 헝 다오 100번지(100 Tran Hung Dao Street)에 자리한 노천가게, ‘반미 사이공’은 푸꾸옥에서 가장 신선한 빵과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곳이다. 메뉴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두 가지. 여기에 치즈나 아보카도를 추가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제일 먼저 기본 메뉴를 맛보는 편인데, 그래서 처음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9호(24.10.0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