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몇 천 세대가 들어섰다. 집과 도로만 놓여 있고 주변에 변변한 가게조차 없던 시기다. 그때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가능케 했던 것은 아파트와 함께 지어진 상가들이다. 이 강남 대단지 아파트 상가의 시조가 바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신사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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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신사시장 |
신사시장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깊숙한 곳에 있다. 한강변에 가깝고 주변은 바로 아파트 단지와 압구정초등학교다. 신사시장은 아파트를 사이로 한 약 200m 길이의 도로 양쪽에 있다. 물론 이 상가들은 각기 금강상가, 현대상가, 신사시장으로 구분되지만 보통은 신사시장이라 부른다. 상가는 1976년 현대아파트 준공 당시 같이 지어졌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으로 한쪽은 3층, 한쪽은 1층짜리이고 그 안에 재래시장 신사시장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재래시장이라니…. 하지만 얕보지 마라. 이곳의 ‘경쟁상대’(?)는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 중인데, 많은 주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해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만 신사시장 역시 나름의 경쟁력으로 48년의 구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사시장 안에는 철물점, 반찬가게, 옷수선집, 건어물가게, 떡집, 수입상품점, 문방구, 귀금속점 등 가게들이 있다. 하나같이 10년은 우스울 정도로 20~40년 단골 장사를 한다. 그중 소위 ‘강남아파트단지 3대 떡볶이집’인 쌍둥이네도 있다. 올초 대치동 은마상가 만나분식이 문을 닫았다. 당시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아쉬움에 이곳을 찾아 1주일 영업을 더 할 정도로 ‘단골가게의 소멸’이 화제였다. 여기 쌍둥이네는 42년째 떡볶이, 순대, 어묵, 잔치국수를 팔고 있다. 매운 맛이 강하지 않고 달달한 맛이 매력적인 떡복이가 원픽이다. 단지 안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위치한다. 여기 학생들 대부분이 아파트 주민이라 그들에게 쌍둥이네 떡볶이는 좌판시절부터 어릴 때부터 길들어진 입맛이다. 이른바 ‘압구정 키즈’라면 누구나 알고, 먹어본 맛이다. 어르신들은 어떨까. 그들은 지금은 팔지 않는 순대국에 소주 한 잔을 그리워한다.
상가거리의 양 끝에 카페 두 곳이 있다. 블루리본을 10년째 받고 있는 로스팅하우스 커피트리와 에스프레소 로이이다. 커피트리는 아메리카노도 맛있지만 바닐라라떼와 밀크티가 유명하다. 앉을 자리는 3자리뿐이라 테이크아웃이나 아니면 볕 좋은 날 서서 먹어도 괜찮다. 에스프레소 로이는 유기농 벌꿀라떼가 시그니
처다. 특히 크림 카페라떼에 뿌려나오는 시나몬 가루는 묘하게 커피와 잘 어울린다.
이제 현대아파트도 2026년 전후로 재건축에 들어간다. 그러면 번듯하고 현대적인 상가가 들어서겠지만 시간이 녹아든 재래시장 특유의 감성은 재현하기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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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장진혁(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8호(24.10.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