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독수리' 촬영 위해 25시간 비행하기도
↑ 정광석 촬영감독./ 사진=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연합뉴스 |
'고래사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170여 편의 한국 영화를 촬영한 정광석 촬영감독이 오늘(8일)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유족과 영화계에 따르면, 정 감독은 이날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입대 후 홍보 업무를 맡아 사진을 찍은 것을 계기로 제대 후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조명 스태프로 일하던 고인은 1962년 이봉래 감독의 '새댁'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1960∼1980년대 '평양감사'(조긍하 감독·1964),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1971), '혈육애'(김기영·1976), '고래사냥'(배창호·1985), '땡볕'(하명중·1984),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1989) 등 다양한 감독 작품을 촬영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고인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1992), '투캅스'(강우석·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1999) 등에 참여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동감'(김정권·2000), '신라의 달밤'(김상진·2001) 등을 찍었고 '아랑(안상훈·2006)을 끝으로 촬영 현장을 떠났습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촬영부로 일하던 시절 찍은 작품까지 합하면 총 184편의 영화를 남겼습니다.
고인은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1980∼1990년대 신인 감독과도 활발하게 작업했습니다.
곽지균 감독의 '겨울나그네'(1986), 박종원 감독 '구로아리랑'(1989), 이현승 감독 '그대안의 블루'(1992), 김지운 감독 '조용한 가족'(1998) 등이 고인의 카메라를 통해 나왔습니다.
특히 당시 영화계에서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끈 배창호 감독과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인연을 맺은 이후 '적도의 꽃'(1983),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젊은 남자'(1994) 등 총 8편의 영화에서 협업하며 콤비로 거듭났습니다.
생전 고인에게는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완성도 있게 영화를 촬영한다"는 평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고인은 콘티나 모니터 없이도 머릿속으로 장면을 편집했고,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도 촬영을 신속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일반적이던 1960∼1970년대 고인은 다작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968년 한 해에만 12편의 작품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남다른 촬영 열정을 지닌 고인은 당시 기술적 한계를 맨몸으로 극복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65년 김기 감독의 공군 전투 영화 '성난 독수리'를 촬영할 때는 실제로 전투기 뒷좌석에 앉아 촬영하느라 25시간 동안 비행했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박진감 있게 포착하기 위해 기차가 옷깃을 스칠 만큼 가까이 올 때까지 버티며 촬영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40여년간 영화계에 몸담으며 탁월한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보여준 고인은 촬영과 관련된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땡볕'으로 대종상영화제 촬영상, 시카고국제영화제 최우수촬영상 트로피를 안았고 '인정사정 볼것 없다'로는
고인의 빈소는 쉴낙원김포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발인은 모레(10일) 오전 10시, 장지는 인천가족공원과 무지개뜨는언덕입니다. 유족으로는 아들 훈재·원찬 씨, 딸 화숙·리나 씨, 배우자 이정순 씨가 있습니다.
[김가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gghh7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