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모두 노르망디 시골 가정 출신으로 계급 이동 경험을 가졌다. 에르노의 부모는 공장 노당자를 거쳐 식료품점을 열었고, 라그라브의 부모는 교회 지역으로 이주하며 계급 하락을 겪었다. 가톨릭 신앙은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학교와 지식은 구원의 수단이었다. 공감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문학과 삶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 아니 에르노·로즈마리 라그라브 지음 / 윤진 옮김 / 마음산책 펴냄 |
에르노에게 작가로서의 자각에 영향을 준 건 독서였다. 18살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환한 빛 같은 책이었다. 가차 없는 이 글이 그녀의 세계관을 찢어버렸고 사회가 성차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남성 위주의 문학사에서 벗어나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도리스 레싱 등을 만나게 됐다.
기존 질서를 두려워하지 않는 에르노는 지배계급의 교묘한 차별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해왔다. 라그라브는 에르노에게 “당신은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힘을 바로 우리 안에서 찾아내라고 촉구하면서 문을 열어주었어요”라고 고백한다.
서민 가정 출신으로 작가와 교사로 살아온 ‘계급 탈주자’이기도 했던 에르노는 특히 엘리트의 언어가 아닌 출신 계급의 언어를 사용해 ‘밋밋한 글쓰기’를 시도했는데 이는 보수적인 문학의 관점에서 파격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사물처럼 간주할 것”이라는 원칙이 자신의 글쓰기를 밀고 나가는 추동력이라 설명한다.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이 경외하는 글쓰기의 비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들려준다. “나는 내밀한 것을 글로 쓰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을 나와 분리된 존재, 다른 사람으로 느끼거든요. 그 또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반항과 전복의 작가는 어느덧 노년이 됐다. 라그라브는 “난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쇠락하게 되리라는, 자율성을 잃어버리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미칠 듯이 불안해진다”고 털어놓는다. 에르노는 우정을 나눈 동료에게 35살에 일기장에 써놓은 글귀를 들려준다. “늙음과 죽음, 그 모든 것을 생각하지 말 것. 생각하면 절망하게 된다.”
젊은 날, 페미니스트로 ‘자발적 임신 중단’을 외쳤던 작가는 이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난 노년이 향유의 시기가 되면 좋겠어요. 다시 말해서 끝내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싶어요.”
석탄 상인 빌 펄롱은 빈곤하게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어느 친절한 어른의 후원 아래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그런 본인이 그저 ‘운’이 좋았음을 민감하게 자각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있고,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며, 따뜻한 침대에 누워 다음 날 어떤 일들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안온한 일상을 흔들 사건이 일어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갔다가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 클레어 키건 지음 /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펴냄 |
『맡겨진 소녀』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이 번역 출간되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실화인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곳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