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의 섬’ 키날리크 vs ‘실크로드의 시간’ 셰키
국토 면적의 약 60%를 차지할 만큼 아제르바이잔은 산봉우리로 덮여 있는 나라다. 산악 지형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인근 소도시나 산악 마을로의 여행이 유독 관심을 끈다. 그 중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대 코카서스 산맥 주변에 두 개의 산악 마을이 있다. ‘산 속의 섬’이라 불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고 외진 마을인 키날리크(Khinaliq)와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셰키(Sheki)가 바로 그곳이다.
↑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키날리크 마을 |
아제르바이잔 여행기②에서는 산악 마을인 키날리크와 셰키의 두 지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출발과 교통의 어려움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키날리크로 향하는 여정에서 프라이빗 택시 대신 히치하이킹을 선택한 경험이 나와있습다. 키날리크는 고립된 산악마을로, 특이한 언어와 독특한 환경, 주민들의 어려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독특한 매력과 어려움 속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들이 여행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키날루크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없어 현지인의 홈스테이가 주로 제공되며,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가족들의 소개와 이 지역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키날루크의 에코마마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현지 생태관광과 관련된 이야기도 소개되었습니다. 셰키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꼽힙니다. 여행자는 셰키에서 역사적인 건축물과 실크로드 시대의 문화적 유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셰키의 중심부와 궁전, 교회, 백인 알바니아 교회 등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명소로 언급되었으며, 특히 역사적인 건축물과 문화적 영향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지 예술인의 샤바카 공예, 키시 교회, 그리고 실크로드 시대의 여관인 캐러밴세라이 등이 셰키의 문화적인 풍경과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내용도 다루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최대 도시 바쿠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자 소도시로 떠나는 발걸음에 기대와 더불어 염려가 따라붙었다. 경험상 편리한 여행은 재미를 반감시키고 불편한 여행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렇기에 염려와 더불어 재미도 따라붙을 것이었다.”
↑ 쿠바행 시외버스(좌), 아제르바이잔의 고요한 소도시 쿠바 도심 전경(우) |
↑ 아제르바이잔의 고요한 소도시, 쿠바 도심 전경 |
쿠바에서의 하룻밤이 여정에 불쑥 끼어들었다. 인적도 차량도 드문 고요한 소도시의 풍경, 구름이 한층 짙어져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나는 저녁이건만 쿠바의 하늘 아래 이곳에서 택할 수 있는 옵션은 오직 하나. 숯불에 구운 꼬치구이와 생맥주로 허기진 몸과 마음을 달랬다.
↑ 숯불에 구운 고기와 맥주로 여정의 피로를 달랜다. |
앞서 키날리크를 다녀온 바쿠에서 만났던 한 여행자의 후기를 용기 삼아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도로 위에서 엄지를 들었다. 일단 고요한 소도시에 나타나 엄지를 들고 있는 여행자의 차림새는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리를 활보하던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여행자에게 다가와 무슨 영문인지 묻기를 여러 번,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진심은 통한다.
↑ 히치하이킹으로 봉고차 운전자와 약 27km를 이동했다(위 2장). 두 번째 히치하이킹에선 키날리크 주민을 만났다(아래 2장). |
기다림은 고됐지만 한방은 통했다. 처음 멈춰선 차량이 다행히도 키날리크와 방향이 같았다. 이 봉고차 운전자와 함께 약 27㎞를 이동했다. 절반 이상의 이동이었다. 히치하이킹의 이동은 언제나 그렇듯 쓰디쓴 인내와 달디단 열매가 항상 같이 따라 붙는다. 삶의 모든 순간에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이 함께하듯이.
↑ 에덴동산과도 같은 아름다운 키날리크로 향하는 길 |
먹을 것이 귀한 산골마을의 삶이 불편한 여행이 일으키는 잡음을 단숨에 잠재웠다. 힘겹게 뒷좌석에 엉덩이를 집어넣곤 쥐 죽은 듯 창 밖만 응시했다. 산골마을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슬픔은 없는 기쁨의 동산, 창 밖이 온통 ‘에덴동산’처럼 보였다.
↑ 키날리크로 가는 길 |
해발 2,500m 산악지대에 조성된,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고 외진 고립된 마을이다 보니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써 존재한다. 마을에 특별히 관광상품이라 할만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진 마을이라는 환경 자체만으로 방문의 이유와 목적이 성립되는 곳이다. ‘산 속의 섬’이라 불릴 만큼 원뿔 모양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지형과 기후는 오랜 세월 이 마을만의 독특한 역사적, 민족적 가치를 키웠다.
↑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키날리크 마을(해발 2,500m) |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선 9월이면 이미 겨울이 시작되는 데다 한겨울의 기온이 영하 30~40도에 달할 정도로 매우 춥고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길이 막혀 차량의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을을 여행할 수 있는 시기는 7월과 8월 여름에 한정된다. 여름이라고 해 봤자 이곳의 최고기온은 영상 15~18도에 불과하다.
↑ 대 코카서스 산맥의 유려한 풍경 |
이곳의 첫인상은 멋모르는 여행자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을까? 아무리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산악마을이라고는 해도, 또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도 갖춰져 있지 않다 해도 그 정도 더러운 환경이 이해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과 그 주변 골목길은 마치 자연이 파괴된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 정돈되지 않은 키날리크의 집과 골목길(좌로부터 1, 2번째 사진), 산악마을에서 동물의 배설물은 주요한 땔감이 된다(우측 사진). |
지나치는 마을 주민한테 ‘홈스테이’라고 물은 뒤 안내를 받는 것이 이곳에선 지도보다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에코마마 인 키날루크 게스트하우스(Ecomama in Khinalig guest house)는 그 방법을 이용해 쉽고 빠르게 찾았다.
↑ 키날루크의 대표 숙박시설인 홈스테이 |
과거로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과 얼음장 같이 차디찬 수돗물, 불편한 잠자리 등이 ‘재미’로 다가온 건 고작 하룻밤의 숙박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홈스테이 내부 거실 및 주방, 침실 |
키날루크에서 즐길 거리는 사실 홈스테이가 8할을 차지한다. 현지인 가족을 환대를 받으며 이들과 연대를 쌓고 이들의 일상을 곁에서 보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홈스테이 안주인이 요리하는 전통요리를 맛보는 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창문 너머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 일 등이 8할을 채운다. 나머지 2할은 마을을 산책하는 것이다.
↑ 마을 산책 도중 만난 마을 아이들 |
↑ 키날루크의 하나뿐인 마켓(좌)과 하나뿐인 찻집(우) |
지도상 키날루크에서 셰키(Sheki)까지는 불과 약 100여㎞ 거리지만 이 둘 중간에 자리한 바자르두주 산이 이동의 편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 100㎞ 대신 560㎞를 삥 돌아서 이동하는 것. 두 번째 북서부 소도시 여행의 목적지인 셰키를 가기 위해 약 210㎞를 달려 바쿠에 다시 돌아와야 했고, 거기서 셰키행 버스를 타고 다시 북서부 방향으로 약 350㎞를 이동했다.
↑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셰키. 실크 무역의 선도적인 국제중심지로 성장한 도시가 바로 셰키다. |
셰키 중심부와 셰키 칸 궁전(Palace of Sheki Khans)은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 셰키에서 생산된 실크는 세계에서 품질이 가장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 셰키 도심 어디에나 공예품이 자리한다 |
고대 백인 알바니아 교회의 본거지이기도 한 셰키는 역사적으로 종교적 다양성을 대표하는 도시로 군림했다. 기독교는 이미 1세기에 이곳에 소개되었고, 이슬람교는 7세기에 전파됐다. 현재 셰키에 남아 있는 여러 교회와 모스크는 과거 백인 알바니아인의 흔적과 오늘날 이슬람국가로서의 아제르바이잔의 특색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관광요소다.
↑ 셰키 모스크(1번째 사진), 약 1,500년 된 키시 교회가 셰키 성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2, 3번째 사진). |
↑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칸 궁전(좌)과 칸 궁전 서쪽에 자리한 샤바카(격자 프레임) 워크숍 |
특히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과 결합되어 다양한 컬러의 빛과 광선을 내뿜기 때문에 다채로운 궁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셰키의 민속공예이기도 한 샤바카는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유리 조각을 조립하듯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샤바카의 기하학적 패턴은 태양, 생명 에너지, 시간의 영원한 흐름, 우주의 무한함을 상징한다.
↑ 셰키의 민속공예인 ‘샤바카(Shabaka)’ 장인 라수로브 토피그 씨 |
그의 아버지 라수로브 아슈라프(Rasulov Ashraf, 1928~1997) 씨는 20세기 샤바카 예술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으로 샤바카 전통이 순수하고 고전적인 형태로 계승 및 발전될 수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샤바카 공예는 100% 수공업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창문 하나를 제작하는데 크기에 따라 3~6개월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 요새화된 구조물 형태로 지어진 하부 캐러밴세라이(Caravanserai: 여행자숙소) |
4개의 입구는 건물의 네 모퉁이에서 각각 마당으로 연결되며, 1층의 넓은 내부 안뜰과 창고는 실크로드 당시 마차와 상인들의 짐을 보관하던 공간이자 물물교환과 협상이 이뤄지는 시장으로 활용되었다. 셰키 역사지구를 방문
[글과 사진 추효정(c5718447@naver.com) 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