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위버스로 글로벌 팬덤 실시간 소통
K라는 수사, 보증서가 되다
지금까지 팝, 영화, 드라마, 푸드 등의 앞에 수식된 ‘K-’는 한국적인 어떤 것을 위한 표기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K-’는 품질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전 세계가 K에 관심을 가지는 신기한 세상이다.
그리고 다른 매거진들은 어떤 이를 표지 모델로 삼았는지 둘러보았다. 뷔를 표지 모델로 쓴 매체가 우리 외에 한 곳 더 있었고, NCT의 태용, 블랙핑크의 지수, 아이브의 안유진, 엔하이픈의 멤버 2명, 신인 그룹 제로베이스원 등이 각 패션 매거진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배우 손석구, 축구 선수 이강인도 커버를 장식했다.
↑ 사진=각 잡지사 |
꼭 셉템버 이슈에만 K팝 스타를 기용하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돌을 표지에 내세웠느냐에 따라 잡지 판매율의 등락이 굉장히 심하다. 이 때문에 1년 12달의 표지 중 대다수가 그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 판매율에 영향력을 가진 건 국내 독자가 아니다. 역시나 아티스트의 해외 팬덤이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인 셉템버 이슈 커버는 대부분 K-팝 스타들이다. 1년 12달의 표지 중 대다수가 그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 판매율에 영향력을 가진 건 국내 독자가 아니다. 역시나 아티스트의 해외 팬덤이다.”
↑ BTS 정국의 ‘Seven’은 미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서 7주 연속 정상을 지켰다. K팝 솔로 가수로는 올해 최장 차트다. |
대부분 드라마를 통한 한류였다.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한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 판권을 판매하고, 현지에서 방영 또는 상영되었을 때 인기몰이를 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다.
드라마 한류가 아시아 지역에서 왕성한 파도를 일으켰다면, 대략 2세대 아이돌쯤으로 분류되는 소녀시대, 카라, 샤이니, 2NE1 등의 그룹들은 아시아를 넘어 남미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북미, 유럽 시장의 벽을 허물진 못했다고 판단된다. 이런 시기를 거치며,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핵심적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판권 판매와 앨범 수출이 대부분의 유통 물량이던 시절을 넘어, OTT 플랫폼과 디지털 스트리밍의 활로가 완전히 열렸기 때문이다.
↑ 팬과 아티스트의 소통 플랫폼 위버스(위버스 갈무리) |
K라는 수사는 어찌 보면 공산품의 ‘Made in OOO’과 같은 인증 표시로 읽힌다. 뮤직, 영화, 시리즈, 음식 등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문화 범주에서 보면 K는 ‘한국산’의 함축이다. 한류는 일종의 흐름을 공식화한 용어였지만, K는 본격적인 제조국 인증 표기가 되었다.
↑ 이제 K는 본격적인 제조국 인증 표시법이 되었다. |
또 최근엔 베를린에 갈 일이 있었다. 한 행사장의 직원에게 또 다시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았다. 서울이라고 했다. 갑자기 반색하며 “여행 가고 싶은 도시 중 첫 번째”라고 했다.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 발생한다. 떠올려 보자. 과거 해외 여행에서 우리를 향한 질문 중 첫 번째는 “아 유 차이니스? 아 유 재패니즈?”였다. 한류를 넘어 K-컬쳐의 부흥이 이끌어낸, 그래서 일반 대중이 피부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 바로 이런 모습에서부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 글로벌 팬덤은 이제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됐다. |
미국 출신의 뮤지션들조차 선망하는 ‘핫 100’ 차트에 BTS는 5곡 이상을 올렸고, 그들의 솔로 활동 역시 성과를 보였다. 하물며, 최근 논란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세계 잼버리 대회의 상흔조차 아이돌 그룹이 전면에 나선 피날레 공연으로 반전을 꾀했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런 형국에서 과연 ‘K’는 어떤 의미를 내재하고 표출하는 것일까?
↑ 루이 비통의 새로운 하우스 앰배서더로 발탁된 BTS 제이홉(사진 루이 비통) |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 자부심을 주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신뢰를 전했던 것처럼 말이다. K팝에서 시작된 (과거적 표기로의) 한류는 전 세계에 폭풍을 일으켰고, 넷플릭스에서 시작된 <오징어 게임>은 과거의 한류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드라마의 세계화를 이끌어냈다.
“K라는 수사는 어찌 보면 공산품의 ‘Made in OOO’과 같은 인증 표시로 읽힌다. 뮤직, 영화, 시리즈, 음식 등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문화 범주에서 보면 K는 ‘한국산’의 함축이다. 한류는 일종의 흐름을 공식화한 용어였지만, K는 본격적인 제조국 인증 표기가 되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 자부심을 주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신뢰를 전했던 것처럼 말이다.”
↑ 미국 3대 힙합 매거진 ‘The Source’는 BTS 슈가의 앨범 [D-Day]를 ‘2023 천재적인 KPOP 앨범’ 1위로 선정했다(사진 제공 비티쿠) |
그래서 이제 K는 일종의 글로벌 표기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국에서 잘 된 이후, 수출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결과물을 팔아왔다. 지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형태는 한국과 해외 시장을 동시에 고려한다. 특히 음악 산업은 더 그렇다. 어떨 때는 되려 해외에서 좋은 반응과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역으로 국내로 유입되는 경우도 있다.
↑ 이제 롤라팔루자 같은 해외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선 K팝 스타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뭐 이런 걸로 야단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야단법석 떨어야 할 일이 맞다. X세대 언저리에 위치한 나와 같은 이들에게 뮤직 페스티벌은 한마디로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으로 국내 페스티벌이 아닌 글래스톤베리, 코첼라, 룰라팔루자 등과 같은 꿈의 무대에, 그것도 프라임 타임의 무대에 한국 아티스트가 오른다는 건,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다.
↑ 이제 K콘텐츠는 OTT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된다. 사진은 디즈니플러스의 <무빙>시리즈(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동시에 K는 일종의 ‘인증서’가 되기도 한다. 중국이 자본으로 할리우드 및 해외 엔터테인먼트에 침투한 반면, 한국은 소프트웨어로 인증을 얻어냈다. 그렇기에 이 인증서는 꽤나 값진 산물임에 틀림없다.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이 제작하고 연출한 어떤 소프트웨어라도 일단 긍정적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무조건적 맹신과 옹호는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응집된 팬덤의 힘은 꽤나 충성도가 높다.
↑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동시 공개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스페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날씨를 잃어버렸어>(사진제공 디즈니플러스) |
K는 자생적으로 스스로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굳이 우리가 K라고 표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힘을 가졌다는 말이다. 마치 영국산 밴드 비틀즈가 북미 시장에 진입했을 때 생겨났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는 표현처럼 이제 전 세계는 ‘코리안 인베이전’을 겪고 있다.
“한류에서 시작해, 한국의 음악, 드라마, 음식 등을 표기하기 위해 붙여진 수식어 K는 이제 진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제조국 표기에서, 포괄적인 한국 문화를 지칭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또 같은 음악이고, 드라마이며, 영화인데, 뭔가 다른 정서로 관객, 시청자, 청중을 휘어잡는 그런 문화적 산물이 바로 K가 된 것이다. 동시에 K는 일종의 ‘인증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전 세계는 ‘코리안 인베이전’을 겪고 있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콘셉트를 차용해 잠수교에서 펼친 컬렉션 런웨이(사진 루이 비통) |
더욱이 K는 한국과 서울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와보고 싶어 한다. K-컬처의 급부상에 따라 패션계에서도 서울을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하는 도시로 꼽기도 한다. 루이 비통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콘셉트를 차용하여 잠수교에서 컬렉션 런웨이를 펼쳤다. 구찌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사운드트랙을 쇼 전부터 사용하며 경복궁을 들썩이게 했다. 20년 전 한류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위상임에는 틀림없다.
↑ BTS 제이홉의 ‘Jack In The Box’ 앨범 제작 및 활동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
그러니 잡지를 만드는 우리조차도 달라진 K의 위상에 신세를 진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 아티스트를 한국 미디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소통하며 만들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 ‘블랙핑크 더 팰리스(BLACKPINK THE PALACE)’는 블랙핑크가 로블록스에서 선보이는 몰입형 체험 공간으로 뮤직비디오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에서 블랙핑크의 디지털 패션부터 대표 안무까지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사진 로블록스). |
이제 전 세계는 ‘코리안 인베이전’을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각 브랜드, 빅히트뮤직]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