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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구나' 생각이 들었다"...60년 만에 빛본 장욱진 첫 '가족' 그림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기사입력 2023-08-20 16:14 l 최종수정 2023-08-21 18:57
배원정 학예연구사 "빈 집의 벽장 안에 비스듬히 있었다"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장욱진의 1955년 '가족도'
처음으로 돈 받고 판매해 막내딸에게 바이올린 선물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x16.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x16.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평생 가족을 그린 한국의 대표 작가인 장욱진(1918~1990)의 1955년 작품이 일본에서 발굴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근·현대미술의 1세대로서 김환기·박수근·유영국·이중섭과 함께 '한국 미술의 대가'로 불리는 장욱진 화백이 그린 최초의 가족도인 1955년작 '가족'을 발굴하고 소장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6일 언론에 밝혔는데요.

지난 1964년 반도 화랑에서 개최한 장욱진이 연 첫 개인전에서 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뒤에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그림 '가족'을 극적으로 발굴하고 국내 소장품이 될 수 있도록 설득을 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를 MBN이 취재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연구 성과' 아닙니까?' 센 척 했지만 긴장했죠"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화물감, 7.5×14.8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화물감, 7.5×14.8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생전에 1972년작인 '가족도'를 포함해 30여 점 이상 가족을 그려온 화백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두었을 만큼 큰 애착을 가진 작품이자, 생애 첫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으로 알려졌던 것이 바로 장욱진의 1955년작 '가족'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장욱진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일본인 시오자와 사다오(1911~2003)에게 팔린 뒤 행방을 알 수 없었던 1955년작 '가족'을 발굴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출장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이 그림 '가족'에 대해 앞서 화가의 부인인 고(故) 이순경 여사가 "조그마한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언급했습니다. 큰 딸인 장경수 씨 역시 이 작품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아, 장욱진 연구자들의 궁금증은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배 학예사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배 학예사는 MBN에 "장욱진 그림의 소재가 반복되지 않느냐"며 "까치, 가족, 아이들로 고정이 되어 있는데, 상당히 많은 가족 그림을 볼 때마다 '이 그림이 1964년에 팔려갔는데 아쉽다'는 언급이 자꾸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발굴한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발굴한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생전 장욱진과 깊은 친분을 유지한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가 집필한 평전 '그 사람 장욱진'에는 장욱진 화백의 타계 이후 1주기 전시를 준비할 당시 해당 그림이 전시되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청이 있어 일본에서 수소문했지만 찾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그림이자 조각가 박승구(1919~1995)의 액자틀에 담긴 작품. 그리고 소장가도 행방을 모르고 신문에 실린 바가 없으며 도록과 브로슈어도 없어 정확한 형체를 모르지만 구전으로 전해 오던 작품.

배 학예사는 말합니다. "구전에 따르면 한 서울대 제자 분이 한 번 명륜동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양복 주머니에 넣었대요. 그러니까 '예끼 이 사람아. 어디 정도 안 뗀 걸 가져 가려고 그러나'라고 그러셨대요. 그러니까 더 궁금한 거죠."

배 학예사는 "없으면 없는 대로 그것도 연구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출장을 떠납니다. 호언장담했지만 배 학예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겉으로는 센 척 했지만 없으면 얼마나 그렇겠느냐, 많이 긴장했고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날강도가 아닌 줄 어떻게 아나?"...쉽지 않았던 방문

작품 '가족'을 일본에서 발견한 이야기, 영화같지만 쉬운 과정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본 출장을 결심하기까지만도 4개월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발굴을 돕기 위해 일본 내에서 신분이 보장되는 유명 일본 예술원의 서예가 회원 다카키 세이우가 소장가의 아들 측에 편지를 보냈지만 아들 측이 읽기만 하고 답을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시오자와 슌이치 부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시오자와 슌이치 부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배 학예사가 실제로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니, 그제서야 답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안 와주는 것이 고마운 일"이라며 "우리 집에는 정말로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림을 사간 시오자와 사다오의 아들 시오자와 슌이치 씨는 "아버지께서 출장을 다녀오실 때면 무얼 사왔는지 항상 보여주셨는데, 당시 제가 중·고등학교 때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있을 리가 없는데 헛걸음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제가 대신 집 안을 찾아라도 볼 테니 기회를 한 번만 달라"는 배 학예사에게 슌이치 씨는 "날강도가 아닌 줄 어떻게 아냐"며 "일본 외무성을 통해 오라"고 말합니다. 배 학예사는 "포기하려면 1초이지만 어떻게든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안 열리는 벽장 열어보니...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일본 오사카 근교에 위치한 오래된 아틀리에.

소장가의 아들이 사는 집이 아닌, 생전에 소장가인 아버지 시오자와 사다오가 생활했던 공간은 인적 없는 빈 집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배 학예사는 일본 미술품 운송회사 직원과 함께 낫으로 정원의 잡초를 쳐내가면서 빈집으로 향했습니다. 허리춤에 모기향 향불을 피우는 철통을 끼워넣고, 창문을 나무로 닫아놓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빈 집에서 을 발견했을 때의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빈 집에서 <가족>을 발견했을 때의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먼지를 뒤집어쓴 공간 안으로 들어가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아틀리에의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짐이 한가득이었고, 일본의 운송회사 직원들이 아틀리에 안에 있는 캔버스 한 장, 한 장을 들춰보고 있을 때 배 학예사는 눈에 보이는 벽장 안을 뒤지기로 합니다.

먼지 때문에 콜록대는 일본 회사의 직원들을 뒤로 한 채 안 열리는 벽장 안으로 몸을 최대한 숙여 휴대전화의 손전등을 켜고 보니, 나뒹굴듯이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그림이 보였고, 그것이 바로 장욱진의 '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곳을 찾았느냐는 MBN의 질의에 배 학예사는 "그림이 작으니까 다른 그림에 포개져 있거나 다락방 모서리 쳐박혀 있거나 할 것 같다는 꿈같은 이미지가 머리 속에 있었다"며 "그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는데 10분 만에 찾아 폐를 안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이 나를 기다렸구나"...호텔 방에서 펑펑 울어

한국으로 운송되는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한국으로 운송되는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발견 이후 처음 소장가 가족 측과 협의한 조건은 해당 작품을 빌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작품을 찾으러 온 큐레이터가 직접 찾아냈으니 안 빌려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배 학예사는 "작품이 저를 기다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이어 "작품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제가 안 찾았다면 계속 벽장에 있는 것 아니느냐"며 "60년 동안 빛도 못 보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분을 보장하라는 소장가 아들 측의 요구 때문에 동행했던 일본 대사관의 직원까지 돌려보내고 난 뒤 멀찌감치 잡은 호텔 방에 돌아온 배 학예사는 눈물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정말로 아틀리에에서 작품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하고 졸이던 마음이 풀리며 안도함과 동시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발굴에 협조해달라는 서예를 써준 일본 예술원 회원을 향한 감사함이 섞여 복잡한 심정이 든 것입니다.

이때 동시에 '아무래도 일을 하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인데, 이 작품이 아예 한국의 소장품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향불 켜고 설득...소장가 아들, 흔쾌히 판매 결정

한국에 도착한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한국에 도착한 장욱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대여'가 아닌 '소장'으로 조건을 바꾸기 위해 배 학예사는 바로 돌아갔습니다.

왜 다시 왔느냐고 묻는 소장가의 아들 슌이치 씨에게 배 학예사는 아버지 사다오의 사당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그곳에서 향불을 켜고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대로 수리하고 복원해야 전시장에 걸 수 있는데, 누군가의 소장품이면 이런 수리가 쉽지 않다는 논리였습니다. 실제로 타인의 소장품일 경우에 액자를 함부로 뜯을 수 없어 복원 작업 등이 어렵습니다.

2시간 반 동안 설득한 끝에 슌이치 씨가 판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배 학예사는 "성격이 깔끔한 사람이었다"며 "돈 받고 파는 것인데도 판매를 결정한 뒤에는 가격은 안 보고 흔쾌히 사인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구매가 확정되기까지 2달의 시간이 더 흘렀고, 국립현대미술관 담당 학예사들은 그동안 슌이치 부부의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일사분란하게 유화 보존처리 담당 학예사를 일본으로 파견하고 한국으로 빠르게 작품을 배송해오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음 달 장욱진 회고전서 공개돼

지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당시 메인 이미지 [사진=연합]
↑ 지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당시 메인 이미지 [사진=연합]

이렇게 장욱진이 그린 최초의 가족 그림이 60년 만에 대중에 공개됩니다.

다음 달 14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하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 이 그림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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