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경영에도 변수...절도 방지 AI 기술도 등장
나이키 본사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습니다. 나이키가 1984년에 최초로 문을 연 대형 할인 매장(팩토리 스토어)도 포틀랜드에 있습니다. 나이키는 지난해 9월, 이 매장을 폐쇄했습니다. 이유는 좀도둑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에 나이키 매장이 위치한 블록에서 경찰이 접수한 '매장 절도'(shoplifting) 건수가 276건인데요, 2019년 신고 건수의 3배라고 합니다.
이 매장은 좀도둑 때문에 2023년 2월에 한 차례 문을 닫은 적이 있습니다. 포틀랜드시에 순찰 강화를 요청했지만, 쉽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결국 아예 장사를 접기로 한 거죠.
이런 일이 당연히 포틀랜드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경찰이 올해 2월에 공개한 나이키 매장 절도범의 범행 모습입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나이키 매장 상당수가 좀도둑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 산호세 나이키 매장 절도 현장 / 사진=캘리포니아주 산호세 경찰 홈페이지 |
레고도 좀도둑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레고 블록 도둑이 들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70대 노인의 집에서 도난당한 레고 세트 2800여 개를 압수했습니다. 오리건주 경찰도 지난 달 도난당한 레고 세트 4천여 개를 회수했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47세 남성, 57세 남성이 범인인데 경찰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 정도 물건을 훔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범죄 전문가들은 아마 레고 블록이 절도 대상 품목 10위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청바지나 핸드백도 도둑들이 많이 노리는 제품이라고 하는데요, 특정 브랜드 제품이 이런 물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하니 레고 절도가 얼마나 빈번한지 짐작이 갑니다. 이렇게 레고 블록을 노리는 이유는 되팔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좀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소비자 정보 제공 사이트 '포브스 어드바이저'에 지난 6월, 소매업체 660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1년에 한 번 이상 도난 피해를 봤다고 응답한 비율이 85%에 달했습니다. 13%는 매일 도난을 경험한다고 응답했습니다. 21%는 일주일에 종종 도난 피해를 당한다고 답했으니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가운데 30% 정도는 일상적으로 도난에 시달린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경찰들이 SNS나 경찰 홈페이지에 자주 올리는 내용 가운데 하나도 아래 사진처럼 매장 절도범에 대하여 신고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CCTV에 절도범 얼굴이 찍혀도 검거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하도 매장 절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기 때문일까요? 소매업체들이나 언론들이 ‘슈링크’(shrink)라는 단어도 빈번하게 사용합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뜻은 감소나 수축인데 소매업체들이 사용하는 맥락을 고려해서 우리 말로 옮기면 '손망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서류상 존재하는 제품이 실제로 매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파손이나 단순 분실, 서류 기재 오류가 ‘슈링크’의 원인이겠죠. 그런데 미국 기업들이 겪는 ‘슈링크’는 상당 부분 절도가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물건이 없어져도 절도와 분실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슈링크’ 가운데 절도 비중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최근엔 '슈링크'가 미국 유통업체의 경영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올해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소매협회(National Retail Federation)의 자료를 분석해 '슈링크' 손실 비용을 보도했습니다. 절도 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추정할 수 있을텐데 이 비용이 지난해 1420억 달러였습니다. 요즘 원달러 환율로는 190조 원이 넘습니다. 게다가 '슈링크' 비용이 2020년 이후 꽤나 가파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 수치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긴 합니다. 물가 상승 등으로 같은 물건이 사라졌더라도 기업이 평가하는 손실 규모가 과거보다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업들마다 절도, 분실, 폐기 처분 등으로 처리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고요. 기업들이 경영 실적 악화 원인을 진지하게 찾기보다 단순히 '슈링크'에 원인을 돌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슈링크'가 미국 유통업체의 고질적 고민이 됐고, '슈링크' 비용과 '슈링크'를 방지하기 위한 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지어 '슈링크' 때문에 회사 운영에 결정타를 입는 곳도 있습니다. 40여 년 동안 운영되던 '99센트 온리 스토어'는 지난 4월 전국 매장 371개를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가게 이름 그대로 모든 물건을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아 흔히 한국에 '미국판 다이소'로 소개되던 곳입니다. 소비자들의 구매 트렌드 변화, 값싼 물건을 공급하기 어려워진 외부 환경도 폐쇄 결정의 배경이겠지만, '슈링크' 증가도 원인이라고 '99센트 온리 스토어' 최고 경영자는 밝혔습니다.
이러다보니 절도를 막기 위해 최첨단 AI 기술을 도입하는 가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미국 CBS는 한 기업의 절도 방지 AI 기술을 소개했는데요, 매장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인체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손님이 주머니 등에 물건을 집어넣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 'Item in pocket', 즉 주머니에 물건이 들었다고 붉게 표시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손님이 주머니에 물건을 넣으면 가게 사장에게 휴대전화로 경고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업체 측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 기술을 도입한 점포가 500곳 정도 된다고 합니다.
↑ AI 활용한 절도 방지 시스템 홍보 영상 / 사진=AI업체(veesion) 홈페이지(https://veesion.io/en/) |
이런 최첨단 기술이 좀도둑 예방에 도움이 될까요?
지난달 CBS에 한 개인금융사이트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응답자의 20%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물건을 훔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절도를 했다고 인정한 사람 중 90%가 비싸진 물가와 생계 해결을 이유로 꼽았습니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