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매운 맛 유행 주도...'한국 드라마' 인기도 한 몫
'불맛 치킨버거'
한국 식품업체의 신제품 이름 같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 버거킹이 올 여름 내놓은 신메뉴입니다. 7월18일부터 '불맛 메뉴'(Fiery Menu)를 전국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운 맛이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습니다. 가장 매운 5단계 제품의 이름은 'Fiery Bacon Royal Crispy Chicken Sandwich'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불맛 베이컨 바삭 치킨버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쇠고기 패티가 들어간 음식만 햄버거로 부르다보니, 치킨버거 대신 샌드위치로 부르고 있습니다.)
↑ 버거킹 신제품 출시 광고 / 사진=버거킹 홈페이지 캡처 |
스타벅스도 4월에 매콤한 음료를 출시했습니다. '스파이시 용과'(Spicy Dragonfruit) 주스, '스파이시 파인애플'(Spicy Pineapple) 주스, '스파이시 딸기'(Spicy Strawberry) 주스입니다. 조금 더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칠리 파우더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과일 주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매운 맛은 느껴보고 싶은 고객을 위해 '스파이시 크림 콜드 폼'(Spicy Cream Cold Foam)도 선보였습니다. 콜드브루에 얹어먹으라고 스타벅스 홈페이지에서는 안내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올 봄에 일부 매장에서 '핫 허니 아포가토' 같은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여기엔 칠리 파우더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실제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긴 합니다.)
↑ 스타벅스 홈페이지 주문 창 / 사진=스타벅스 홈페이지 캡처 |
코카콜라에서는 올해 초 '스파이스 맛 콜라'(Coca-Cola Spiced)를 내놨습니다. 코카콜라가 10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하며 'original taste', 'classic'이라는 문구를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뜻밖의 시도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습니다. 코카콜라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태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겁니다. 2022년 북미 지역에서 '코카콜라코크', '제로슈거' 등의 매출액은 고작 1% 늘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가 해결 방안을 고민한 결과가 바로 '매콤한 맛'입니다. 수 린 차(Sue Lynne Cha) 코카콜라 북미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매콤한 음료를 시도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했다"며 출시 배경을 밝혔습니다.
닥터페퍼의 인기도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닥터페퍼는 이름 그대로 약간 알싸한 맛이 특징입니다. 한국에서는 코카콜라나 펩시에 비하면 닥터페퍼가 유명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코카콜라, 펩시에 늘 판매량이 뒤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농담처럼 "탄산음료계의 평양냉면"이라는 별명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마니아는 있지만, 보편적인 음료는 아니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닥터페퍼가 최근 펩시를 누르고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비버리지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2023년 미국 탄산음료 시장점유율에서 닥터페퍼는 8.34%를 기록했고, 펩시는 8.31%였습니다. 부동의 1위는 코카콜라 코크였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은 닥터페퍼의 반란에 더욱 주목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닥터페퍼의 도약은 탄산음료계의 이례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USA투데이는 지난달 8일, 닥터페퍼의 점유율 확대를 보도하면서 2000년 이후 20년 동안의 탄산음료 시장 점유율을 복기했는데요. 2000년 기준 1위는 코카콜라 코크, 2위는 펩시, 3위는 스프라이트, 4위는 다이어트 코크, 5위는 마운틴 듀였고, 6위가 바로 닥터페퍼였습니다. 이 점유율 순서는 지난해에도 똑같습니다. 단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닥터페퍼가 2위로 뛰어올랐을 뿐입니다. 20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알싸한 맛에 대한 갈증만큼은 분명히 커진 겁니다.
↑ 코카콜라 '스파이스 맛' 광고 영상 화면 / 사진=코카콜라 홈페이지 캡처 |
지난해부터 미국에서는 '스와이시'(swicy)라는 신조어가 뉴스에 등장하며 트렌드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스와이시는 달콤(sweet)하면서도 매콤(spicy)하다는 뜻입니다. 올해는 확실히 스와이시가 대세로 굳어졌습니다.
스와이시가 유행하는 이유로는 크게 몇 가지가 꼽힙니다. 우선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이색 취향과 미국의 문화 다양성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더 푸드 인스티튜트'는 Z세대(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소비자의 53%는 단맛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루는 '스와이시'를 즐긴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Z세대는 어릴 때부터 여러 국가에서 온 이민자의 자녀들과 어울려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이민자들이 먹는 매운 음식을 접한 Z세대들이 스와이시의 매력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스패닉(남미계) 인구의 증가도 큰 원인입니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6,000만 명이 넘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합니다. 멕시코 등에서 건너온 이들은 '할라페뇨'나 '세라노' 같은 매운 고추에 익숙합니다. 멕시코 소스 '살사'에 사용되는 매운 고추가 바로 세라노 고추인데요. 저도 맛을 봤는데 청양고추보다 더 맵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매운 맛을 계량화한 스코빌 지수로 따져봤을 때도 세라노 고추의 스코빌 지수가 더 높다고 합니다. 청양고추의 스코빌 지수는 4,000~7,000 정도지만, 세라노 고추 스코빌 지수는 10,000~23,000에 달합니다.
여기에 코로나19도 스와이시 유행을 만든 주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하다보니 미각으로라도 그 허전함을 달래려한다는 겁니다. 미각을 흔들어 깨우는 이국(異國)의 맛으로는 매운 맛이 단연코 최고일 것 같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한국 문화 콘텐츠의 유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CNN은 지난 달 "스와이시가 지금 가장 뜨거운 음식 트렌드"라며 스와이시 열풍을 분석했습니다. 글로벌 트렌드 분석업체 'WGSN' 소속 전문가의 인터뷰도 등장했는데요. 이 전문가는 "K-드라마와 K-팝 팬들은 미디어 소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맛도 즐기고 싶어한다"며 미국에서 고추장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에도 고추장을 활용한 요리와 요리 방법이 종종 보도되는데요. 아래 사진은 올해 1월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된 순두부찌개 요리입니다.
↑ 워싱턴포스트 고추장 관련 요리 보도 /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
미국에서는 스와이시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확고한 입맛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릴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더 푸드 인스티튜트'에서는 지난해엔 맛 트렌드가 중앙아메리카의 영향을 받았고, 올해는 아시아 차 음료와 동남아 과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맛 유행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민텔의 바르차스비 싱(Varchasvi Singh) 애널리스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 사이에서 매운 음식과 맛에 대한 욕구가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며 매운 맛 열풍이 일시적 유행은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