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규모 감세정책이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 탓이다.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은 세금부담이 줄어들면 투자자 늘어나 경기가 살아나고, 생산이 확대돼 물가가 안정되고, 결국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감세안 발표 직후 파운드와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영국 국채 투매가 벌어졌다. 정부와 달리 금융시장은 감세가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져,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고 영국이 경제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트러스 내각은 국가 부채가 이미 상당한 수준이고, 기축통화인 파운드화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간과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역사의 첫 장만 읽은 것 같다"고 혹평했고, 래리 서머스 미국 전 재무장관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신뢰의 상실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트러스 내각의 감세정책이 이렇게까지 심한 역풍을 맞은 것은 정책이 잘못 설계된 탓도 있지만 현식인식 부족으로, 가뜩이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는 영국인을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는 뉴욕타임즈(NYT) 칼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대란과 인플레이션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쟁 등 위기를 맞았을 때 정부 정책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어야 하는데 트러스 내각이 부자감세를 들고 나왔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이 에너지가격 급등과 치솟는 물가로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덜 받는 상위 1% 부자들의 세금을 더 깎아주겠다는 정책은 서민들만 더 고통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극심한 반발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신임 영국 총리의 감세안에 대한 시장의 격렬한 반응은 돈(money) 이상의 것"이었다며 "영국은 환상속에 살고 있으며, 사회연대에 대한 염려를 망각한 지도자를 얻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국제적 자문회사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앤드류 굿윈 이코노미스트는 "애초에 잘못 구상된 정책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전달했다"며 "트러스 내각은 그들이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퇴 위기에 몰린 트러스 총리는 부자 감세안을 철회하며 유턴을 선언했지만, 감세안 일부 철회만으로 트러스 내각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크루그
정치적 권위의 상실은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 뿐 아니라 더 많은 정책을 철회해야 할 수 도있다.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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