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욘·마르세유서 4만명에 거처 제공하고 2만명 멕시코 국적 취득 도와
↑ '멕시코판 쉰들러'로 불린 질베르토 보스케스 살디바르 전 프랑스 파리 총영사 / 사진=연합뉴스 |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4만여명의 난민을 구해 '멕시코판 쉰들러'로 불렸던 멕시코 외교관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31일(현지시간) 밀레니오와 엘파이스 등 멕시코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UNESCO)는 질베르토 보스케스 살디바르(1892~1995) 전 주프랑스 파리 총영사·마르세유 영사의 유품과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살디바르 전 총영사는 멕시코 하원의장을 지낸 인물로, 1939~1943년 프랑스에서 총영사와 영사로 일하며 당시 스페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과 독일 나치 박해를 피해 피난길에 오른 유대인과 피란민에게 거처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살디바르 전 총영사는 파리에 머물다 나치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기 직전, 바욘과 마르세유로 세 차례 이동하며 영사관 건물을 망명 센터로 활용해 유대인들과 피란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의 수는 약 4만여명에 달하며, 그 중 2만여명은 살디바르 전 총영사의 도움을 받아 멕시코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던 그는 결국 독일 비밀경찰에게 발각돼 배우자와 세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과 40여명의 영사관 직원과 함께 체포돼 구금됐으며, 약 1년 간 고초를 겪다 풀려났습니다.
살디바르 전 총영사는 이 같은 프랑스에서의 공적 덕에 '멕시코판 쉰들러'라는 별칭으로도 불려왔습니다. 여기서 쉰들러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당시 비밀리에 1천여명의 유대인들을 망명시킨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를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망명시킨 이들의 수를 비교할 때 보스케스를 '멕시코판 쉰들러'로 칭할 것이 아니라, 쉰들러를 '독일의 보스케스'로 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편, 살디바르 전 총영사는 그가 10대였던 1910년에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 정권에 대항한 멕시코 혁명에 참여하며 일찍이 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고, 이후 언론인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일평생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살디바르 전 총영사 사후 멕시코 정부는 그의 생전의 공적을 인정하며 외무부 외교역사수집 담당 부서 등을 통해 그의 기록물을 대대적으로 정리했고, 그 결과 이번에 그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살디바르 전 총영사의 딸인 라우라 보스케스에게 세계기록유산 등재 증서를 전달하며 "아버지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외교관이자 진정으로 모범적인
이에 라우라 보스케스는 "아버지는 항상 자신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신 분이었다"고 살디바르 전 총영사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표하며 오브라도르 대통령에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권지율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ldbf99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