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을 한 또다른 나, 도플갱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생판 남이라도 얼굴이 닮으면 유전자 염기서열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2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페인 조셉 카레라스 백혈병 연구소의 마넬 에스텔러 연구팀은 닮은꼴 32쌍의 얼굴과 생활방식, DNA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연구결과는 같은 날 생물학 저널 '셀 리포츠'에 실렸다.
연구대상이 된 32쌍의 사람들은 가족도 친척도 아닌 남남이다. 부모가 도미니카 공화국과 바하마 출신인 마이클 말론, 리투아니아와 스코틀랜드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찰리 체이슨처럼 조상 뿌리도 모두 다르다. 연구진은 23년간 전세계의 닮은꼴 사진을 모아온 캐나다 사진가 프랑수아 브루넬로부터 외모가 흡사한 사람들의 정보를 얻었다.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 분석결과 32쌍 중 16쌍은 일란성 쌍둥이와 유사한 점수를 받았다. 과학자들은 '쌍둥이급'도플갱어의 DNA를 비교했는데, 놀랍게도 외모의 유사성이 더 높은 사람들 16쌍이 나머지 16쌍보다 많은 유전자를 공유했다. 에스텔러 박사는 "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더 많은 공통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 같지만, 결코 증명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유사한 DNA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가 양육 환경의 영향으로 다른 외모·습관을 갖게 된다는 기존 상식과는 정반대다. 아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더라도 유전적 특성이 유사하면 쌍둥이 같은 외모를 공유한다는 의미다. 인구가 증가할 수록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에스텔러 박사는 "이제 세상에는 시스템이 반복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서 "나의 닮은 꼴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건 불합리한 가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 외모에는 DNA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에 따르면 도플갱어들의 유전자는 비슷하지만 후성유전체(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거나 변형시키는 화학물질과 단백질 집합)와 마이크로바이옴(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달라 차이가 생긴다.
연구진은 해당 연구를 향후 질병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외모가 유사한
다만 연구 대상 수가 36쌍에 불과해 모수가 적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이번 연구결과만 가지고 법의학 등 다른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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