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용의자가 46년 만에 잡혔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의 DNA를 확보했지만, 일치하는 정보가 없어 수사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연구원의 새로운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20일(현지시간) ABC 뉴스 등 외신은 197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19세 소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달아났던 용의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 지방 검사에 따르면 1975년 12월 5일, 당시 19세였던 린디 수 비클러는 한 아파트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범인은 비클러의 목과 가슴, 등, 복부에 19번이나 칼로 찌르는 잔혹성을 보였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칼의 손잡이는 수건으로 싸여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1990년대 DNA 분석법이 나왔을 때 수사관들은 비클러의 속옷에 남아있던 정액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발견했다.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이 관리하는 DNA 데이터베이스인 CODIS에는 일치하는 정보가 없었다.
또 10년이 흐른 2020년, 미국 바이오기업 파라본 나노랩스의 수석 유전 계보학자인 세시 무어는 DNA를 이용해 가계도를 추적하는 '유전자 계보'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계보는 관련 웹사이트 등 데이터베이스에 자발적으로 DNA 샘플을 제출하는 사람들을 통해 용의자의 친척 등 가족 구성원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CODIS 보다 더 큰 가계도를 만들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의 용의자를 유전자 계보로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무어는 "용의자의 아주 먼 친척만 나와 실망이 컸다. 평소에는 공통된 조상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의 공통 조상은 1600~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추적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무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새롭게 접근하기로 했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의 가스페리나라는 마을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았던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무어는 몇달간 랭커스터 관련 문서를 뒤졌다. 또 이탈리아에서 온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 모임도 찾아냈다. 용의자가 가스페리나 출신인 점을 파악하고 있었던 무어는 회원 목록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회원 정보를 입국 기록과 제1·2차 세계대전 입영 등록증과 비교했다. 가스페리나에서 랭커스터로 이주한 남성을 찾아 후손을 식별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어는 조부모 모두 가스페리나 출신인 데이비스 시노폴리(68)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가 살해된 비클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것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시노폴리가 사용하고 버린 커피잔을 회수, 그의 DNA가 비클러의 속옷에 있던 정액
시노폴리는 지난 17일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다. 한 유전 계보학자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노력, 46년이 지난 사건이라도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검찰의 집념이 일군 쾌거였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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