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가 볼로디미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2주간 동행하면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전격 공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대피를 거부하고 수도 키이우에 남았다.
러시아군은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각료들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궁을 급습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도에 머물며 함께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우크라이나 항전의 구심점이 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침공이 시작된 지난 2월 24일 새벽 폭발소리에 잠을 깼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딸과 아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러시아군 특수부대가 낙하산으로 키이우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얼마 후 대통령궁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들은 대통령궁을 진입해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상황이 급박하자 미국과 영국 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인접국가인 폴란드 동부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세우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탄약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대통령이 노출된 것을 알고 지하 벙커로 이동하자고 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타임지는 그의 이같은 항전 의지가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흔들린 순간도 있었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 이유로 자리를 이탈한 정부 관리와 군 간부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주요 관리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상당한 실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고 국가 원수답게 행동해야 했었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타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족들을 피신시킬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며 "대통령이 이들의 복귀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후 대부분의 고위 관리들이 자기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를 철수하고 들어난 민간인 학살 소식을 접하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했다.
지난달 8일 오전 동부 크리마토르스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피란민 50여명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희생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또 끔찍하게 훼손된 여성 시신 사진을 보고 비통해 했다고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한다"며 "이들은 싫증나면 닫아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이번 전쟁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를 통해 자유세계가 이 전쟁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생존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다.
타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날인 지난 4월 19일 그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은 침공 55일째가 되는 날이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인근에서 철수해 다시 동부지역으로 집결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본 그 어느 때보다 큰 전면전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버틴다면 전세를 뒤집을 터닝포인트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상규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