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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이튼, 더빌리에&라이스(CD&R) M&A팀 헤일리 김(김현지) |
'더블 마이너리티(double minority)'는 이런 핸디캡을 두 개 이상 가진 경우를 뜻한다. 이중 부정은 강한 긍정이 되듯, 이중 핸디캡이 강력한 강점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김현지(26·미국명 헤일리 김)는 뉴욕 한복판에서 그런 도전의 역사를 쓰고 있다. 여성, 아시아계라는 두 가지 한계를 딛고 일어선 그녀는 JP 모건을 거쳐 월가 '사모펀드의 효시'로 불리는 클레이튼, 더빌리에&라이스(CD&R)에서 사모펀드 투자 전문가로서 지속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김 씨는 최근 글로벌 회계법인 PwC로부터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부문(세금·이민 서비스 및 테크플랫폼)을 22억달러(약 2조6400억원)에 인수하는 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이는 미국 4대 회계법인(PwC, 딜로이트, KPMG, EY)에서 매각한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부 중 최대 규모다.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외 사업 확장과 새로운 시장 확보의 성공은 임직원들의 원활한 모빌리티에 달려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근무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세무 업무 등을 보다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와 테크놀로지가 중요해졌다. 김 씨는 "이런 사업부를 인수하는 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순수 국내파다. 민사고 졸업 후 세계 최고 경영대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바로 진학했다.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거쳐 JP 모건에 입사했고 '투자은행의 꽃'으로 불리는 M&A 업무를 담당했다.
그 후, 또 한 번의 까다로운 채용 과정을 거쳐, 바이아웃(경영권 인수후 기업가치 제고)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모펀드인 CD&R 에 발탁됐다. 김 씨는 "가는 곳마다 아시아계 여성을 거의 볼 수 없는 환경에 놓여졌지만 그럴 수록 도전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해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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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이튼, 더빌리에&라이스(CD&R) M&A팀 헤일리 김(김현지) |
김 씨는 "1978 년 설립된 CD&R 은 '사모펀드 업계 시조새'로 불린다"며 "45년간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성장해온 CD&R 이 한국 국적 여성을 채용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CD&R 은 1990년 IBM 의 프린터·키보드 사업부를 분리시켜 렉스마크로 독립시키고, 2005년에는 포드로부터 렌터카 사업부문인 허츠(Hertz)를 인수하는 등 분사된 대기업의 사업부를 독립된 회사로 성장시키는 카브아웃 형태의 딜로도 유명하다. 설립 이후 100 여개 기업에 350억달러(약 42조원)를 투자했다. 거래총액은 약 1750억달러(약 210조원)에 달한다.
김 씨는 초기 투자 평가, 자문사들과 심층적인 실사, 채권자금 조달 등사모펀드가 수행하는 투자의 전 과정에서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CD&R 은 100% 지분을 인수하는 바이아웃 딜을 주력으로 한다. 하나의 회사를 온전히 인수하기 때문에, 투자에 있어서 철저한 기업 분석이 중요하다.
와튼스쿨에서 통계학, 재무학을 복수 전공한 김 씨는 이 과정에서 통계적 분석과 복잡한 재무 모델을 창의적으로 결합시키는 방법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인수 대상 회사의 고객사, 공급업체, 경쟁업체 관련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실사과정에서 중요하다"며 "이런 통계적인 추론에 기반해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고 이를 재무모델에 결합시켜 더욱 정확한 평가와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딜이 성사되고 난 후에도,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한 투자 방법론은 인수된 회사가 경영효율성을 제고하고 전략과 자원이용을 최적화해 향상된 실적을 내는 데에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활발해지고 있고 기관투자자들의 대체투자가 늘어나며 투자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독창적인 투자 분석력과 아시아-미국 시장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통해 입지를 쌓아가고 있는 김 씨가 새로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씨는 "아시아 자산운용사, 국부펀드들이 미국의 사모펀드들에 투자를 하기 때문에 아시아 투자자들의 투자 선호도, 사고방식,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업무에 큰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더블 마이너리티'의 월가 진출을 위한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업무로 쉴새 없이 바쁘지만, 미국 사회에 본인과 같은 소수인종, 여성들이 시행착오 없이 정착하는 일을 돕는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다.
CD&R 에서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관련 업무를 도맡아서 하고 있고 소수인종 및 여성들의 투자 경력 기회를 제공하는 SEO AlFP(Alternative Investments Fellowship Program), 걸스 후 인베스트(Girls Who Invest) 프로그램
월가 한국계 금융인 네트워크인 KFS(Korea Finance Society)에서 여성 투자자들의 네트워킹 콘퍼런스를 주도하고 있다.
김 씨는 "미국 사회를 보다 다양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의미있는 사회의 변화를 일으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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