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 측, 존엄사는 인정할 수 없는 행위
↑ 마르타 세풀베다 / 사진=엘코메리치코 영상 |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존엄사를 선택한 콜롬비아 여성 마르타 세풀베다(51)의 존엄사 시행이 취소됐습니다. 콜롬비아 최초로 시행될 예정이었던 존엄사가 집행을 불과 11시간 앞두고 결정이 번복됐기 때문입니다.
존엄사 최종 결정기관인 '존엄사 학제간과학위원회'는 존엄사 집행을 하루 앞둔 9일(이하 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사건을 다시 심의한 결과 말기질환 환자이어야 한다는 규정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안락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만장일치로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재심의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습니다. 세풀베다 역시 취소 통보를 받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세풀베다의 존엄사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10일 오전 7시 집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재심의가 열리던 시각, 그는 생애 마지막 밤이라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위원회는 말기질환을 앓고 있지 않아 대상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여론 눈치보기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이미 "말기질환 환자가 아니어도 고통이 극심하다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기 때문입니다.
막판에 안락사 취소 결정을 내리자 콜롬비아에서는 비판 여론이 크게 일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하원의원 후안 쿠리는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건 극히 개인적인 결정으로 국가는 물론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누가 감히 타인에게 더 고통을 겪으면서 살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정치학자 페르난도 포사다는 "여론에 밀려 개인의 인권을 짓밟은 격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콜롬비아는 1997년 존엄사를 허용한 뒤 2015년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말기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만 허용한다'는 높은 기준 때문에 존엄사가 실제로 이뤄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헌법재판소가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말기 질환자가 아니어도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 심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세풀베다는 즉시 존엄사를 신청했고, 위원회도 헌법재판소를 참고해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국가인 콜롬비아에서 존엄사는 인정할 수 없는 행위라며 비판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에 세풀베다는 "나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하느님도 내가 더는 고통받는 걸 원치 않으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은 존엄사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라며 존엄사 결정 후 오히려 더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존엄사 취소 결정에 대해 세풀베다는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