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엔 갭', 미국 땅 밟지 못한 이민자들의 무덤…수습한 시신만 50여 구

여정 중 쓰러져도 다시 전진…심장마비 등으로 사망
강도·성폭력 사건도 다수 발생

↑ '다리엔 갭' 지역에서 수습된 시신/사진=AP통신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민자들의 목숨 건 여정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넘어올 때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손 꼽히는 '다리엔 갭'은 정글 지역으로, 끝내 미국 땅을 밟지 못한 이민 시도자들의 시신이 발견되는 곳입니다.

현지시간으로 4일, AP통신은 파나마 당국이 올해 '다리엔 갭' 지역에서 시신 50구를 수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해 20~30구가 발견됐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셈입니다.

정글 속에서 발견되지 않은 시신은 수습한 시신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리엔 갭'은 미국 알래스카부터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팬아메리카 고속도로가 유일하게 끊기는 구간입니다. 험준한 산과 하천, 나무로 빽빽한 숲 등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총 106km의 길이에 달합니다.

도로도 없고 공권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위험한 곳이지만, 남미에서 육로를 통해 미국으로 숨어 들어가야 하는 밀입국자들에게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한동안 폐쇄됐던 육로 국경들이 다시금 열리면서 최근 '다리엔 갭' 출발지인 콜롬비아 네코클리에는 미국행 이민자들이 넘쳐납니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칠레와 브라질로 이민했다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미국 재이민을 마음 먹은 아이티인들입니다.

↑ '다리엔 갭' 지역에서 수습된 시신/사진=AP통신

이들이 '다리엔 갭'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우선 네코클리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병목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네코클리의 값싼 숙소나 천막에서 승선을 기다리는 이민자들은 총 1만9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를 타고 정글 초입에 도착하면 밀입국을 돕는 '가이드'들이 이민자들에게 접근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리엔 갭' 현장 취재에서 가이드들은 정글 안내를 돕고 1인당 250 달러(약 29만7천 원)를 받는다며, 가방을 대신 들어주면 10 달러, 아이를 들어주면 30 달러가 추가된다고 전했습니다.

정글을 걷기 시작한 지 몇 시간 후 한 여성이 쓰러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물을 건네주고 곧바로 전진을 이어갔습니다.

비센테 파차르 파나마 법의학연구소장은 "다리엔 갭 시신 다수는 심장마비 등 병으로 숨졌다"며 "쓰러진 후 아무도 보살피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독사에 물려 죽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버려진 시신은 정글의 습기에 빠르게 부패하고, 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또 정글에서는 범죄에도 쉽게 노출됩니다. 이민자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은 그들의 전재산을 빼앗거나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YT에 따르면 국경없는의사회에 지난 5개월 동안 '다리엔 갭' 지역에서 총 245 건의 성폭력 사건이 보고됐습니다.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내와 함께 '다리엔 갭' 지역을 통과한 아이티인 이제리스 실리(34)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극"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임신 중이던 아내가 정글을 건너면서 유산을 해 과다출혈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강도를 만나 빈털터리가 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물도 음식도 없이 정글에서 6일을 보냈다. 강을 건널 때 내 앞에서 6명이 죽는 것을 봤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일주일 가량의 목숨을 건 여정을 마친 이민자는 올해 9만 명을 초과했고, 대부분이 아이티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정글을 통과해도 미국 국경까지는 4천km 넘게 남았고, 미국 국경을 넘지 못할 경우 아이티로 추방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미국 밀입국을 위해 정글을 다시 통과해야 합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