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정·재계 엘리트들의 역외탈세 내역을 담은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2016년에도 유사한 내용인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 공개 당시 이름이 오른 이들 가운데 일부가 사임 하고 검찰 수사에 직면하는 등 국제적으로 적잖은 충격을 안긴지 5년 만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홍콩 페이퍼컴퍼니 관련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3일(현지시간) 전 세계 117개국 언론인 600명이 참여한 탐사취재 결과인 '판도라 페이퍼스'를 공개했다. 판도라 문건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스위스, 싱가포르, 키프로스 등 조세피난처 14곳에 서비스하는 금융기관과 관련된 거래내역, 개인 e메일 등 1190만건의 파일을 분석한 문서다.
판도라 페이퍼스 프로젝트에는 117개국 159개 미디어에서 600여 명의 언론인이 참여했다.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는 앞선 유출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 물량을 보여준다. 2.94 테라 바이트 분량이며 문서 파일로는 1190만건에 이른다. 기록은 대부분 1996∼2020년 내용들이다.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보고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전·현직 정치인은 330여명이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등이 포함돼 있다. 언급된 억만장자로는 터키의 건설업계 거물 에르만 일리카크와 소프트웨어사 레이놀즈 앤드 레이놀즈 전 최고경영자(CEO ) 로버트 브로크만 등이 있다.
이들이 소유한 상당수 계좌는 자산을 감추거나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ICIJ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인도양 섬나라 세이셸, 홍콩, 중미의 벨리즈 등 이미 익숙한 역외 피난처에 등록된 계좌를 파헤쳤다. 사우스다코타주 81개, 플로리다주 37개 등 미국에서 설립된 신탁사에도 일부 비밀 계좌가 있다고 이 단체는 전했다.
압둘라 2세는 캘리포니아 말리부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호화주택을 사들이는 데 1억 달러 이상을 사용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부동산을 거래하면서 편법으로 31만2000파운드(약 5억원)의 인지세를 절약했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대통령도 나라 밖으로 빼돌린 비밀재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이를 출산하고 급작스럽게 재산이 불어난 러시아 여성이 모나코의 해안가 고급주택을 비밀리에 사들였다는 내용도 문건에 포함됐다.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880만 달러짜리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을 보유한 버진아일랜드 업체를 인수해 2017년 이 건물이 주인이 됐다. 이 건물은 현재 인권변호사 출신인 부인 셰리 블레어의 로펌이 주인이다. 블레어 부부는 바레인의 산업관광부 장관 부부로부터 그 업체를 사들이면서 40만 달러 이상의 세금을 절감했다.
문서가 공개되자 셰리 블레어는 남편이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바레인 장관 측은 영국법을 준수했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바비시 체코 총리는 2009년 프랑스 칸 인근 지역에 있는 부동산을 사려 2200만 달러를 유령회사에 투자했지만, 그 유령회사와 해당 부동산은 그의 자산 신고서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바비시는 총선을 앞둔 음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ICIJ는 판도라 페이퍼스에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 지역에 설립된 회사 가운데 2만9000곳의 소유주를 밝혀냈다. 이 중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도쿄올림픽·패럴림픽추진본부 사무국장을 맡았던 히라타 다케오 전 내각관방장관도 있었다.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에 한국인 이름이 등장한 문건은 8만8353건이다. 이 중 8만274건이 홍콩 일신회계법인에서 나왔다.
국내 ICIJ 제휴사인 뉴스타파에 따르면 한국인 수익소유자(beneficial owner)는 465명(개인 이름 275명, 회사 이름 184명)으로 나온다고 전해졌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말리부의 호화별장을 사들였다는 의혹도 판도라 페이퍼스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ICIJ는 "판도라 문건은 2013년 이후 공개된 일련의 역외탈세 문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며 "글로벌 엘리트들이 판도라 페이퍼스를 통해 전 세계 시민들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숨기는데 사용된 비밀스러운 시스템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역외탈세한 개인뿐만 아니라 탈세가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도 저격한 것이다.
분석에 참여한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사우사다코타주의 불투명함은 중남미 카리브해 국가들과 맞먹는다"며 "미국 밖에서 온 수천만 달러가 사우스다코다주의 수폴스의 신탁회사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며 일부는 인권유린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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