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 '오커스(AUKUS)' 출범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오랜 우방국인 미국과 호주 주재 자국 대사를 전격 소환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지역 중국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15일(현지시간) 결성된 미국, 영국, 호주 3국의 새로운 군사기술동맹 파트너십이다. 첫 협력분야로 호주 해군에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 그동안 오커스 결성을 까맣게 몰랐던 프랑스는 동맹국으로부터 소외된 데다 호주에 수출하려던 77조원규모 디젤 잠수함 계약마저 파기되자 자국 대사 소환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19일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7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오커스 관련 협의를 위해 미국과 호주 주재 대사를 즉각 소환했다고 밝혔다. 르드리앙 장관은 "이례적인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며 "매우 특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사 소환은 곧바로 진행됐고, 무기한 지속된다. 또 르드리앙 장관은 성명에서 "프랑스를 제외한 새로운 협력관계가 결과적으로 660억달러(77조원)에 달하는 호주의 디젤추진 프랑스 잠수함 구매계약 취소로 연결됐다"며 "동맹국과 파트너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2003년 이라크전을 둘러싼 미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전 강행에 대해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면서 양국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사 소환조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AP통신은 프랑스가 가장 오래된 동맹인 미국에 주재하는 대사를 소환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또 18세기 미국·프랑스혁명으로 잉태된 양국 관계가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점)에 다다른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으로 개최한 ‘에너지와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필리프 에티엔 주미 프랑스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오커스 결성을 "동맹국과 파트너십,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장피에르 테보 호주주재 프랑스 대사도 귀국길에 호주를 향해 "엄청난 실수"라고 말했다.
이번에 영국주재 프랑스 대사의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영국과 관련해 ‘기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오커스에 합류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영국 주재 대사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지 결론을 내지 않았다.
미국, 영국, 호주는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프랑스 몰래 극비리에 오커스 결정을 논의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콘월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와중에 G7과 별도로 오커스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호주는 프랑스 달래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에밀리 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우리는 프랑스의 입장을 이해하며, 입장차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 내로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호주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익을 공유하는 많은 현안과 관련해 프랑스와 다시 함께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서방국가 동맹 균열은 유럽연합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중국에게 기회일 수
딩이판 전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은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오커스는 유럽 동맹과의 협력을 약속한 미국 신뢰를 어느 정도 낮출 것"이라며 "이는 유럽과 긴밀한 관계 진전을 원하는 중국에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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