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 정파 탈레반에 점령될 위기에 놓이고 있다. 지난 5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군하기 시작하자 무장반군 탈레반이 공세에 나섰고 주요 도시가 차례로 함락되면서 이제 수도 카불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 대부분을 사실상 장악한 가운데 아프간 정부가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정부군은 사실상 오합지졸에 불과한 상황이다.
14일 아프간 톨로뉴스 등에 따르면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정부 안보 회의에서 "정부는 군 부대, 치안 병력, 민간봉기군을 최대한 지원해 탈레반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지난 5월 미군 철수 본격화를 계기로 대규모 공세를 벌이기 시작했다. 동부에 자리 잡은 카불과 중부 지역,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사실상 수중에 넣었다. AFP통신, AP통신 등 외신 집계와 탈레반 주장을 종합하면 탈레반은 이날 현재 전체 34개 주도 가운데 17∼18곳 이상을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측근들이 탈레반에 항복하거나 출국했고 군대는 붕괴 직전에 놓이는 등 가니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더 고립된 상황"이라며 "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권력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프간군이 탈레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대해 NYT는 "미래가 점차 불확실해지는 아프간에서 분명해지는 한 가지는 아프간군을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키우려 한 미국의 20년간 노력이 실패했단 점"이라고 밝혔다.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임금을 받는 아프간군(ANDSF)은 30만699명이다.
탈레반 수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핵심 전투대원은 6만명이고 탈레반을 추종하는 지역 무장단체 대원이 9만명, 이외 지지자들까지 포함하면 총 20만명으로 추산된다.
숫자만 보면 규모 면에선 아프간군이 탈레반보다 우위다. 그렇지만 아프간군 수는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많다. 임금을 타 먹으려고 거짓으로 등록한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군 실제 병력은 통계의 6분의 1 수준일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칸다하르 최전선의 경찰 특수부대를 이끄는 압둘 하림(38)은 NYT에 "우리는 부패에 질식하고 있다"라면서 자신의 부대도 정원은 30명인데 실제로는 15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군은 미국과 국제사회 지원으로 연간 50억~60억달러(약 5조8000억원~7조140억원) 예산을 사용한다. 미국이 '아프간군 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 2005년부터 이달 6월까지 750억2000만달러(약 87조6983억원)에 달한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돈이 830억달러(약 97조270억원)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지원에도 불구 대등한 전투조차 벌이지 못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사기와 전략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NYT는 "미국이 철군을 발표했을 때 탈레반은 (공세에 나서려고) 동력을 결집하기 시작했지만 아프간군 내에는 군인으로서 아슈라프 가니 정부를 위해 싸우는 게 목숨 걸 만큼의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졌다"라고 전했다.
미국 민간싱크탱크 CNA의 조너선 슈로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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