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중국 소셜미디어앱 겸 쇼핑앱 샤오홍수 공식 웨이보 계정에는 "크게 얘기해주세요. 오늘은 무슨 날인가요?"라는 포스트가 올라왔다. 4일은 톈안먼 사태 32주년 기념일이었다. 톈안먼 사태를 기억해 달라는 뉘앙스를 담은 듯한 이 포스트는 얼마되지 않아 삭제됐다. 5일 자정에는 1400만 팔로워를 보유한 샤오홍수 웨이보 계정 자체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샤오홍수 웨이보 계정을 검색하면 법규 위반으로 의심되는 계정이라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대신 올라왔다.
샤오홍수 게시물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게시물이 1989년 사건을 언급할 의도는 아니었고, 최근 몇달 간 샤오홍수가 주말을 앞두고 금요일마다 비슷한 내용을 게재해왔다는 관계자 멘트를 인용했다.
하지만 이 문구가 중국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무력 진압한 사건으로, 중국 당국에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중국에서 테크 기업이 중국 당국의 규제나 경고를 받는 일이 점차 잦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 보도했다.
시작은 알리바바였다. 중국 대표 빅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마윈의 알리바바그룹은 지난해 11월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다 취소했다. 중국 당국은 올 초 알리바바에 182억위안(3조2760억원)에 달하는 반독점 과징금도 부과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플랫폼 경제 반독점 규제 지침'을 만들고 빅테크 기업 위반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알리바바 외에도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부분의 앱 운영사들은 독점 또는 불법 개인정보 사용 등을 이유로 규제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가지 못했다.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 4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34개사 경영진을 소환해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교통운수부가 디디추싱, 메이투안 등 10개 차량 플랫폼 기업 경영진을 소환했다.
WSJ는 중국이 알리바바그룹의 앤트그룹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기업 개편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앤젤라 장 홍콩 법대 교수는 "중국의 목표는 공식적인 개입 없이 규제 요구를 준수하도록 기업을 슬쩍 찌르는(nudge)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하지만 이런 중국 정부의 비난이나 규제가 기업 운영에는 걸림돌이 된다. 3월 음식배달 회사인 메이투안, 전자상거래 회사 핀두오두오, 차량 플랫폼 서비스인 디디추싱 등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각각 150만 위안(2억6098만원)의 과징금을 떠안았다. 중국 규제기관이 날을 세우자, 4월에는 12개 기술 기업이 반 경쟁적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인터넷 검색· 차량 공유 서비스 등 기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부상한 빅테크 기업들을 규제하는 나라는 중국 만은 아니다. 미국도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과 반독점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영국 더타임지는 중국에서 독점 문제가 부상한 이유에 대해 전자상거래가 전체 소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들었다. 타임지는 "중국에서는 전자상거래 시장이 소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보다 훨씬 높고, 따라서 이 시장을 지배하는 존재가 소비자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나라보다 크다"고 분석했다.
빅테크 성장에 힘입어 부호 반열에 오른 젊은 창업가들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중국 당국에는 부담이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업자는 중국 정부가 상상력이 부족하며 여전히 전당포 정신을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반독점 규정 위반으로 벌금을 문 이후 알리바바는 "우리는 오늘날 사회가 플랫폼 회사에 대해 새로운 기대를 갖고 있다는 걸 안다.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왕싱 메이투안 CEO는 반독점 관련 조사를 받는 도중 체제 비판시로 알려진 당나라 시구를 SNS에 올렸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중국 당국이 반독점·개인정보 사용 등에 대해 빅테크 기업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리자 빅테크 기업들은 너도나도 몸 낮추기에 나섰다. 30~40대 젊은 창업자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가 하면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며 돈 보따리를 푼다.
동영상 공유 소셜미디어 틱톡과 더우인을 만든 바이트댄스 창업자인 장이밍은 올 연말 CEO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핀둬둬 창업자인 황정도 지난해 CEO에서 물러난 데 이어 올
왕싱 메이투안 CEO는 개인 재단에 173억 홍콩 달러(2조4830억원)을 기부해 교육·과학 연구 등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4월 포니 마 텐센트 홀딩스 CEO는 공공복지, 농촌 활성화, 탄소 중립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77억 달러(8조573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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