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앞으로 전문직 취업비자(H-1B 비자)를 소득순으로 할당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기존에 추첨식으로 진행해왔던 H-1B 비자 기회를 고소득자부터 배정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변경을 추진하는 표면적 이유는 미국인 일자리 보호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민 일자리 챙기기 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취업 비자의 발급 장벽을 높여왔다. H-1B 비자가 전문직 취업을 위한 목적으로 발급되는 만큼, 소득이 낮은 일자리까지 외국인들이 빼앗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번처럼 소득 기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미국 노동부·국토안보부가 H-1B 비자 발급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뒤 알려진 구체적 조치다. 당시 켄 쿠치넬리 국토안보부 차관대행은 "새 기준에 따르면 기존 H-1B 비자 신청의 약 1/3 은 거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규정 개정을 서둘러 내년 3월 새로운 H-1B 비자 신청 전에 제도 개선을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다.
다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비자 제도 변경도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H-1B비자는 연간 8만5000건이 발급되고 있다. 매년 20만 명 안팎이 지원하기 때문에 추첨 방식으로 배정되어 왔다. 이중 2만 건은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배당됐다. 기존에도 워낙 발급이 어려워 '로또 비자'로 불렸지만 이번 조치로 더 받기가 어려운 비자가 됐다.
추첨식으로 비자 기회가 할당되다보니, 취업에 성공하고도 이 비자를 받지 못해서 취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꽤 발생했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IT기업들은 H-1B비자 제도를 통해 미국에서 유학한 전세계 인재를 매년 수천명씩 고용해왔다. 구글은 지난해 6500건의 H-1B 비자를 신청했다. 인도, 중국계 다음으로 한국인 고학력자들이 많이 받아온 비자로 알려져 있다. 이 비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유학생들의 취업 절벽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H-1B 비자는 거부율이 매년 올라가고 있다. 2016년에 6.1% 였던 거부율이 2019년에는 15.1%로 높아졌다. 기존 H-1B비자 보유자도 임금을 새 기준에 맞춰 올려받지 못하면 갱신할 때 문제가 될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앞으로 비자를 받기 전 단계부터 생체정보 수집을 강화하기로 했다.
WSJ에 따르면 백악관은 비자 신청 전 단계부터 지문정보 등을 사전 채취하는 방안으로 규정 개정 검토 중이다. 현재는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 영사관에 비자 인터뷰를 하러 가서 현장에서 지문채취를 하지만 사전에 지문과 다른 생체 정보를 제출하는 식으로 개정한다는
구체적인 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테러리스트 입국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WSJ은 백악관이 국토안보부(DHS)를 통해 전세계 미국 영사관에 기존보다 좀 더 상세한 지문 채취가 가능한 기계를 보내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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