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국의 헤지펀드 '케리스데일캐피털'이 내놓은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 보면, "우리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AMD라는 회사가 2020년까지 파산을 신청할 것이라고 예상한다..(중략)...비록 이 회사가 턴어라운드 할 것이라는 스토리가 시장에 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회사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고 본다. 그들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경쟁력이 없으며, 경쟁회사들은 기술적으로 점프를 하고 있는데다, 회사 내부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며, 재정상태는 안좋아지는데 전략은 효과가 없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보고서대로라면 AMD는 올해 내로 망했어야 하는 회사다. 그러나 AMD는 망하기는 커녕 2018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완전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7일(현지시간)에는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3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순이익이 3.9억 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크게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리사 수 CEO는 올해 2월 향후 5년간 매년 20% 씩 매출을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수익성(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또한 향후 5년간 현재 43% 수준에서 50% 가량으로 한단계 높이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AMD는 27일(현지시간) 거금 40조원 (350억 달러)를 들여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 회사 '자일링스'를 인수하는 결정을 내린다. 리사 수 CEO는 턴어라운드에 그치지 않고 350억 달러 짜리 '초대형'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 결정은 속도를 내고 있는 AMD에 날개를 달아주는 딜이 될 것인가?
↑ AMD가 2020년에 망할거라 예상했던 케리스데일 캐피털의 보고서 |
↑ 자일링스 로고 |
빠르고 강력한 컴퓨터에 대한 수요는 끝없이 강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들의 광범위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초당 수백억번의 연산을 필요로 하는 강력한 작업들을 해 나가고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27일 스탠퍼드 대학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 "신약개발 영역에서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단백질 반응을 측정하는데 인공지능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텔 AMD 엔비디아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이런 특정한 수요를 갖고 있는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 제조단계에서부터 자신들의 반도체를 맞춤형으로 공급해 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마치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를 위해 독자적인 반도체 A14을 만들고, 구글이 자체적인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독자적인 반도체 텐서플로우를 만들며, 테슬라가 자율주행차를 위해 자체적인 반도체를 만드는 것처럼, AMD는 개별 기업들의 수요에 맞는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작업을 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인 셈이다.
자일링스를 인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고객 맞춤형의 시스템 반도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표명으로 읽을 수 있다. 리사 수 CEO는 이날 실적발표를 통해 "우리의 CPU와 GPU에다 자일링스의 가속기와 소프트웨어 등을 결합하여 굉장히 컴퓨팅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업무에 완전히 새로운 성능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3분기 AMD의 기업용 반도체 사업부문 실적. 전분기는 물론 전년동기에 비해서도 2배 이상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
AMD의 자일링스 인수합병은 2021년까지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중국 정부에서 이를 반대할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고성능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AMD가 이런 공격적 베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기술적 우위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는 차원에서 볼 때 긍정적이라는 평가들이 현지에서는 많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헤지펀드가 공격했던 6년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AMD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경쟁력을 더해가고 있으며, 경쟁회사들과 대등하게 기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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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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